김석동 “유럽위기는 대공황급 충격”… 박재완 “외부충격 무리없이 흡수”… 엇갈린 진단, 시장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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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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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팀 ‘일관된 시그널’ 실종… 일부선 “경고-무마 역할분담”

유로존 위기가 금융시장을 넘어 실물경제로 파급되는 시점에서 정부 경제 당국자들의 ‘널뛰기식’ 발언이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시장경제 체제의 최대 위기가 될 것이라는 극단적 비관론과 동요하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엇갈리면서 위기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정책 당국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두 가지 견해 모두 논거가 있고 설득력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위기를 극복해야 할 당사자인 정부 당국자라면 관찰자적 발언은 자제하고 시장에 일관된 시그널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논란은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대공황’ 발언으로 불거졌다. 4일 금융위 간부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유럽 재정위기는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을 미칠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심각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위기 대비 태세를 한층 강화해 달라”며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5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세계 경제위기는 대공황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언급하면서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중량급 인사들이 이틀 연속 ‘대공황’이란 단어를 거론한 것은 유로존 위기가 실물로 전염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도 시장의 불안감을 지나치게 부추겼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청와대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부 당국자들의 발언이 다소 가벼웠다”며 “대통령이 여러 자리에서 유럽 위기에 대한 경고와 대비책에 대해 언급한 상황에서 이런 발언을 할 이유가 없다. 계속 나오게 되면 불필요한 불안감만 생길 수 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경제정책 당국은 서둘러 낙관론 불 지피기에 나섰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7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2008년에 비해 위기대응 능력이 크게 강화돼 대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불안한 시장심리를 다독였다.
▼ 일부 당국자 ‘가벼운 입’… 버냉키 ‘무거운 입’과 대조적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8일 “유럽이 어렵다지만 독일 등의 수출은 늘었다. 한국도 수출은 매달 많이 성장하고 있다”며 긍정론을 폈다.

공포에 사로잡힌 경제주체를 달래기 위한 발언이었다지만 이번에는 당국의 상황 인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당국자들의 상황 판단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 시장은 객관적-신중한 발언을 신뢰

일부 경제전문가는 한국 경제를 책임진 최고위 인사들의 엇갈린 발언에 대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완전히 전이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김 위원장과 강 회장의 비관론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스페인 신용위기가 세계 금융시장과 자본주의 체제에 미칠 충격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이라면 박 장관과 김 총재의 낙관론은 한국 경제가 유로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서 얘기했다는 것이다. 금융시스템과 채권, 환율, 주식시장을 책임진 금융위원장과 성장을 관리하는 재정부 장관이 주목하는 영역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가 심화되면서 추가경정예산 편성까지 거론되는 시점에서 재정부의 상황 인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정부 성장률 전망이 ―2%까지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지금은 성장률이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고 단기외채 비중도 2008년 52%에서 올 1분기 33%까지 떨어지는 등 현재의 경제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금융시장 위기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시차나 향후 닥칠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지금의 지표에 근거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이 많다.

전문가들은 “‘대공황 이후 최대’ 같은 표현처럼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상황 진단은 위기 대응의 차원을 넘어 시장에 과도한 공포를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책임감 있는 단어 한마디로 세계 금융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넘치지 않으면서 정확히 계산된 발언으로 시장에 신뢰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유럽위기#김석동#박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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