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고졸 채용 물결 타고 상고출신 임원승진 급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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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인사 안홍열-주인종 이어 외환 장명기-정정희 잇단 발탁
입행후 학위-전문성 쌓아… 수장들 “고졸 교육-승진기회 보장”

은행권이 고졸 직원 채용을 대폭 확대하는 가운데 과거 상업고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입행했던 상고 출신 임원의 승진도 늘어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은행권의 고졸 채용이 사실상 전무했고 2010년 신한금융 내분사태로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신상훈 전 신한지주 사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등 상고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은행권 상고 출신 인재들의 입지가 한동안 크게 줄었다.

하지만 올해 인사를 실시한 은행들이 잇달아 상고 출신 임원을 발탁하고 고졸 채용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맞물리면서 더 많은 상고 출신 임원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신임 상고 출신 임원들이 정보기술(IT) 담당, 준법감시인 등 비핵심 업무를 주로 맡았던 과거와 달리 등기이사가 되거나 여신 및 카드 담당 등 요직을 맡는 추세다.

하나금융지주에 인수되면서 3월 경영진을 일괄 교체한 외환은행은 다른 은행의 부행장에 해당하는 7명의 그룹장 중 2명을 상고 출신 인재로 채웠다. 장명기 대기업사업그룹장(군산상고)은 사내 이사까지 겸직해 윤용로 행장에 이어 외환은행의 2인자가 됐고 정정희 여신그룹장(덕수상고)도 발탁됐다.

앞서 2월에는 신한은행이 여신심사그룹을 담당하는 덕수상고 출신의 주인종 부행장보를 부행장으로 승진시켰고, 기업은행도 1월에 광주상고를 나온 안홍열 경수지역본부장을 신탁연금본부 부행장으로 뽑았다. 안 부행장은 기업은행에선 2년 만에 나온 상고 출신 부행장이다. 우리은행의 카드사업본부를 맡고 있는 선린상고 출신의 김진석 부행장도 지난해 말 인사에서 승진했다.

임원의 직전 단계인 본부장 인사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은 올해 초 사상 최초로 2명의 지역본부장을 상고 출신으로 발탁했고 신임 지점장 20명 중 절반이 넘는 11명을 고졸로 뽑았다. 비슷한 시기 하나은행도 대전여상을 졸업한 천경미 대전 관저동지점장을 대전중앙영업본부장으로 발탁했다. 천 본부장은 하나은행의 두 번째 여성 본부장이다.

상고 출신 임원들은 가정 형편 등을 이유로 대학 진학 대신 입행을 선택했지만 이후 주경야독을 통한 학위 취득, 해외지점 근무 등으로 대학졸업자 못지않은 능력과 전문성을 쌓았다. 대표적 사례가 윤종규 KB금융지주 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다. 광주상고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사한 윤 부사장은 은행 업무를 병행하며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1981년 행정고시까지 합격했다. 윤 부사장을 국민은행으로 스카우트한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당시 인사 보도자료에 ‘상고 출신 천재’라는 문구를 직접 썼을 정도다. 윤 부사장은 “본인이 노력하면 입행할 때의 학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라고 말했다.

은행권 수장들도 고졸 채용을 더 늘리고 교육 및 승진 기회도 대졸자와 똑같이 보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말 은행권 최초로 정규직 고졸 행원을 뽑은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경제활동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한데 고졸을 많이 뽑으면 경제활동연령이 낮아져 그만큼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가장 먼저 고졸 채용을 단행한 조준희 기업은행장도 “고졸을 몇 명 더 뽑는 수준이 아니라 고졸 출신 행장이 다시 나올 수 있는 은행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은행권#고졸 채용#상고출신#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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