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급구! R&D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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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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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인재개발실 채용팀의 심성섭 부장은 입사 후 16년째 교육 및 인사업무를 맡아 왔지만 올해처럼 바쁜 때가 없다. 이공계 연구개발(R&D) 우수인력 채용을 위해 전국 대학 공대를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은 한 학기에 한 번 정기 채용설명회만 열어도 인재 확보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학기 중에도 인사 담당자들이 수시로 대학을 돌며 학생들을 만나야 한다. 심지어 공대 동아리 모임과 모꼬지(MT)도 쫓아간다.

전자·정보기술(IT) 기업에서 필요한 R&D 인력은 크게 늘어났지만 공대 졸업생은 줄어들면서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특별관리 대상인 각종 경진대회나 공모전 입상자, 교수들이 추천하는 우수 학생을 잡기 위해 연구소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구소장이 직접 홍보에 나섰다. 출신 학교 선배 사원들은 학교와 연구실을 돌며 일대일로 후배들을 만나 입사를 설득하고 있다.

○ “취업난?”, 전자업계는 구인난


동아일보가 20일 전국 주요 대학 21곳의 정원 추이를 조사한 결과 2011년 전체 학부 정원은 2003년보다 8.8% 줄어든 반면 전자·IT업계 관련 정원(전자전기,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은 12.9% 감소했다. 재료공학을 빼면 정원은 14.3% 줄어들었다.

지난 10여 년간 청년인구 감소 및 대학원 중심 개편 등으로 대학 정원 자체가 줄어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학들이 공대 정원은 더 많이 줄인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이공계 기피 현상의 후유증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기업들의 R&D 인력 채용 규모는 크게 늘었다. 삼성전자의 전체 R&D 인력은 2003년 2만1000명에서 지난해 5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최근 수년간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LG전자도 R&D 인력은 계속 늘리고 있다. 2003년 연간 R&D 인력 채용 규모가 1500명이었지만 지난해는 2810명을 뽑았다.

우수 공학 인재들이 기업체 취업에 관심이 없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공대 최우수 학생들의 희망 진로는 주로 의학대학원, 로스쿨, 고시 등이었고 기업체 취업은 한참 후순위였다”라며 “공학을 계속 하겠다는 학생들도 구글 같은 외국기업 취업을 노리거나 유학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인재난이 심각해지자 기업들은 산학 협동, 입사조건부 장학금 등을 늘리며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국내 14개 대학에 ‘삼성탤런트프로그램’을 만들어 실무에 필요한 교과과정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성균관대 등에는 ‘IT 융합학과’를 개설해 입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고 입사를 유도한다. LG전자도 다수의 공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필요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하고 채용하고 있다.

○ “이공계 최고의 기회”


이공계 기피 현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전자·IT업계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이공계 인력에게는 최고의 기회”라고 말한다. R&D 인력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데다 기업들이 실력 있는 인재 모셔가기에 혈안이 돼 있어 ‘몸값’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우수 이공계 학생들이 줄줄이 진로로 삼았던 의대, 한의대, 로스쿨 등 의료·법조 분야는 최근 공급 과잉으로 가치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공계 기피의 한 원인이었던 엔지니어 푸대접은 옛날 얘기다. 삼성전자 등 관련 기업에선 임원의 과반수가 이공계 출신이다. 삼성전자 최고위 임원 중 거의 유일한 비(非)공대 출신인 최지성 부회장은 “세계를 돌며 전자제품 및 반도체를 팔았는데 공학을 모르니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용어들을 닥치는 대로 외워야 했다”며 “공대 안 나온 것이 얼마나 한이 됐는지 아들도 공대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계적인 R&D 인력 육성을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선욱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는 “한국 기업도 선진국처럼 신입 엔지니어들에게 주식이나 스톡옵션 등 기업 성장의 과실을 나눠줘야 한다”며 “산업에 필요한 인재 공급을 위해 공대 대학원뿐 아니라 학부 정원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기업#고용#취업#전자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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