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임원급 승진 허훈-김명재 연구위원 “현장 엔지니어 프라이드 인정받아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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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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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희망 봤죠”

2005년 LG전자에 입사해 연구개발(R&D)의 한 우물만 파온 HE사업본부의 허훈 연구위원(왼쪽)과 MC사업본부의 김명재 연구위원. LG전자 제공
2005년 LG전자에 입사해 연구개발(R&D)의 한 우물만 파온 HE사업본부의 허훈 연구위원(왼쪽)과 MC사업본부의 김명재 연구위원. LG전자 제공
LG전자에서 액정표시장치(LCD)에 들어가는 백라이트유닛(BLU)을 개발해 온 허훈 연구위원(46)에게 2009년은 천당과 지옥을 여러 번 넘나든 한 해였다. 그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에서 당시 수석연구원이던 그의 팀이 개발에 참여한 LCD TV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수율을 못 맞춰 출시가 미뤄지더니 판매도 부진했다. 허 위원은 자식 같은 제품을 시장에 제때, 제값에 내보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이제 LG전자의 LCD TV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명재 연구위원(45)에게도 지난 몇 년은 끔찍한 시간이었다. LG전자는 변화하는 휴대전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안팎에서 받았다. 단 열흘만 늦어도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김 위원은 반년에 한 차례 운영체제(OS)를 갈아엎는 작업을 하면서 피가 마르는 경험을 수차례 겪어야만 했다. 이제 LG전자는 휴대전화 부문에서의 부진을 딛고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LG전자는 2월 중순 두 사람에게 특별한 보상을 했다. 이들을 연구위원으로 선발한 것. 꾸준한 성과를 내면 정년도 보장받는다. 이들 외에도 32명이 소프트웨어, 금형 등 연구개발(R&D)과 법무, 상품 기획 등 전문 분야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연구위원이나 전문위원으로 선발됐다.

임원급 대우를 받는 연구·전문위원 제도는 2009년 처음 도입됐다. 회사가 R&D에만 매진해 온 엔지니어의 성과를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구본준 부회장도 2011년 신년사에서 “제조업의 힘은 R&D, 생산, 품질과 같은 기본 경쟁력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며 기술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달라진 호칭만큼이나 직장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을 터. 김 위원은 ‘보안구역 접근 권한이 생겨 회사 곳곳을 쉽게 다닐 수 있는 점’을, 허 위원은 ‘VIP용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혜택 치고는 너무 소박하다고 묻자 김 위원은 “연봉이나 대우보다 중요한 건 회사에서 엔지니어를 인정하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프라이드(자존심)”라고 말했다.

엔지니어들은 대개 30대 후반이 되면 현장에서 멀어진다. 승진이나 처우에 대한 부담 때문에 사람을 관리하는 영역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회사를 떠나기도 한다. 이러한 풍토 탓에 머리가 희끗희끗해질 때까지 한 우물을 파는 장인(匠人)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생각을 가진 후배들에게 연구·전문위원은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허 위원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전공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는 이공계 출신에게도 연구위원 제도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회사와 사회가 엔지니어를 더 가치 있는 인재로 바라봐주길 기대했다. 김 위원은 “똘똘한 4명이 평범한 40명보다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며 “R&D 인력들이 사회에서 더욱 인정받고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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