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노트북 덕분에 임용시험 합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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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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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용 노트북으로 영어 가르치는 김경민 교사

시각장애인 영어교사 김경민 씨는 점자 노트북을 이용해 영어수업을 한다. 삼성SDS에서 후원하는 이 노트북으로 2009년부터 공부해 중등학교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시각장애인 영어교사 김경민 씨는 점자 노트북을 이용해 영어수업을 한다. 삼성SDS에서 후원하는 이 노트북으로 2009년부터 공부해 중등학교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1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인왕중학교 2층 영어교실. 시각장애인인 이 학교 영어교사 김경민 씨(24)가 학생들을 바라보며 강의하고 있었다. 김 씨의 손은 앞에 놓인 조그만 기기의 도드라진 부분을 더듬고 있었다. 옆에는 안내견 ‘미담’이가 하품을 하며 누워 있었다.

김 씨 앞에 놓인 조그만 기기는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이다. 이 노트북은 20년 전에나 볼 수 있던 타자기같이 생겼다. 일반 노트북은 덮개를 열면 ‘화면’이 나오지만 김 씨의 노트북에는 아예 덮개 자체가 없다. 화면이 있어봐야 어차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는 노트북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Which one is bigger? I’m taller than you.” 학생들은 이를 따라했다. “비교급은 형용사 뒤에 ‘er’를 붙여야 합니다. 비교할 상대가 있으면 뒤에 ‘than’을 쓰면 돼요. 이해되죠?”

김 씨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은 보조공학 전문기업인 힘스코리아가 만든 점자 노트북 ‘한소네 LX’다. 10개 국어가 지원되고 점자를 일반 문자로 바꿀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다. e메일을 읽어주는 기능도 있고, 블루투스 헤드셋을 연결하면 무선으로 편리하게 책 읽기, 음악 감상 등을 할 수 있다.

김 씨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일반계 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보통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교사가 되려면 대학에서 특수재활학과를 졸업한 뒤 국립서울맹학교 등 특수학교로 부임한다. 하지만 김 씨는 도전을 택했다.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꿈을 ‘일반계’ 학교 영어교사로 정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교사 임용시험에 장애인 전형도 없을 때였다. ‘열심히 살다 보면 길이 나지 않겠나’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김 씨의 눈이 됐다. 입시에 필요한 문제집을 학교에 부탁해서 점자번역을 의뢰하거나, 직접 읽어 주고 녹음도 하는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물론 점자로 된 입시 참고서도 있었지만 매우 적었다. 그것만으로는 교육학과 및 사범대 진학을 위한 충분한 교육효과를 볼 수 없었다. 어머니와 지인들이 총동원돼 시중에 나온 교재 분량을 나눠 녹음했다. 그런 노력 끝에 2007년 숙명여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그 많은 책을 어머니가 매번 읽어줄 수도, 점자번역을 의뢰할 수도 없었다. 책을 못 읽으면 임용시험을 통과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김 씨에게는 점자 노트북이 반드시 필요했다. 타자로 친 것을 USB에 담아 컴퓨터에 꽂으면 음성을 지원하고 점자로도 인식할 수 있는 기기였다. 한 사회기관에서 후원을 받아 사용했지만 기간은 대학에 다닐 때까지였다. 졸업과 동시에 반납해야 했다. 3학년 때부터 김 씨는 고민에 빠졌다. ‘임용시험 준비는 졸업 후에도 계속해야 하는데 다시 어머니의 손을 빌려야 하나….’

그러던 중 2009년 국내 중소업체가 만든 점자 노트북을 삼성SDS가 무상으로 보급한다는 공고가 학교에 붙었다. 반납 기한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고장이 나면 수리를 해주고 한 번 받으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인터넷 화면의 글자를 음성으로 들려주는 CD도 공짜로 줬다. CD 가격은 100만 원이었다.

삼성SDS에서 노트북을 지원받은 후 김 씨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어머니가 컴퓨터로 필요한 부분을 쳐 주면 김 씨가 이를 받아 점자 노트북에 옮겨 공부했다.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는 CD를 넣어 유명 강사의 강의를 음성으로 들었다. 그렇게 2년간 공부를 하고 올해 2월 임용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첨단 정보기술(IT)이 김 씨의 인생에 큰 힘이 된 셈이다.

김 씨는 “장애를 가진 사람일수록 첨단 IT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열세 살 때 완전히 실명하기 전까지 그는 간호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앞을 못 보는데 어떻게 간호사가 될 수 있느냐”는 어머니의 말에 울면서 포기했다. 김 씨는 “만약 스마트 헬스케어 분야의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면 시각장애인들도 간호사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인광 기자 l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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