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안 국회 통과]정국 후폭풍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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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화 실종… 총선 앞둔 ‘정당 빅뱅’ 빨라진다

한나라당이 22일 민주당 등 야당의 반대를 물리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표결 처리하면서 여야 관계가 사실상 파국을 맞게 됐다. 여야 타협의 정치가 무너지고 여야의 소통 부재가 예고되면서 정국 상황이 꼬일 가능성이 높다. 당장 내년도 예산안의 기한(12월 2일) 내 처리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모든 국회 의사일정을 중단하고 본회의장 항의농성에 돌입했다. 박희태 국회의장과 본회의 사회권을 넘겨받은 한나라당 소속 정의화 국회부의장 등에 대한 사퇴도 촉구하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김유정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역사가 심판할 한나라당의 폭거에 맞서 강력히 싸울 것”이라며 “박 의장과 정 부의장, 강행 처리 시 불출마를 약속한 22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민에게 석고대죄하고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은 FTA 표결 처리 파동의 후폭풍을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용섭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우리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폐기를 위한 재협상을 촉구하며 총선에서 우리가 다수당이 되면 폐기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일단 냉각기를 거친 뒤 야당과의 대화 복원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 당직자는 “일단 민주당이 진정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는 없다”며 “다만 여야 간 몸싸움이 감정이 악화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후폭풍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내심 한나라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야당 의원들이 지역구 관련 예산 확보가 필요하고 선거 운동을 위해 지역구에 빨리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의사일정 보이콧이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 관계 급랭으로 당분간 본회의 소집이 어려워지면서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당초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 김용덕 박보영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상정했지만 처리하지는 않았다. FTA 비준동의안과 이행법안의 처리로 여야가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두 안건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실시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정 부의장이 무기명 투표를 진행시키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20일 퇴임한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 이후 대법관 두 명의 공백 장기화는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

이날 FTA 처리는 여야 내부에도 상당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민주당의 경우 한나라당의 표결 처리에 무릎을 꿇으면서 당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손학규 대표는 당 내부적으로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렸던 사안임에도 민주노동당 등과의 ‘통합’만을 외치며 막무가내 식 반대만 주장했다는 당내 비판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단합된 모습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FTA 표결 처리를 주도한 홍준표 대표의 존재감이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당이 물리적 충돌의 부담감 속에서도 최대 쟁점인 FTA 비준동의안을 전격적으로 처리함에 따라 향후 당청 관계에서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 대표는 FTA 처리 후로 미뤘던 쇄신론도 본격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가릴 것 없이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눈길은 더욱 싸늘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10·26 재·보선 후 정치 쇄신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또다시 험악한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치권에선 FTA 표결 처리가 결과적으로 정치권 전체의 새 판 짜기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화를 주장하는 차기 대권주자에게 한층 더 유리한 환경이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이 연상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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