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땅 뺏기’ 유통업체의 무한식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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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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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PB상품 늘리고 TV-커피까지 ‘기웃’
유니클로 H&M등 SPA브랜드도 파죽지세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던 20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의 유니클로 명동 중앙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11일 오픈 후 3일 동안 총 3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대박’을 터뜨린 유니클로의 기세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매장을 찾은 사람들은 연면적 4000m2에 달하는 매장의 규모에 한 번 놀라고 가격에 두 번 놀랐다. 유니클로 외에도 자라(ZARA), H&M 등 대형 의류매장이 점령한 명동 거리는 새로운 유통질서 아래 재편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 유통업계, “주(住) 빼고 다 다룬다”

유통업자의 힘은 의류뿐 아니라 쌀, 생수, 화장지, 기저귀 등 식품과 생활필수품으로 점점 더 확대되는 추세다. 유통업자들은 최근 TV 같은 고가(高價)의 전자제품과 원두커피 등 브랜드 파워가 중요한 품목도 자신의 브랜드 아래로 편입해 가는 중이다. 이런 식이라면 집 빼고는 유통업계가 다루지 않는 물품이 없을 정도다.

‘드림뷰(Dream View)’ 브랜드로 나온 49만9000원짜리 이마트 TV는 출시 3일 만에 1차로 준비해 놓은 물량 5000대가 모두 팔려 유통업계는 물론이고 삼성전자, LG전자 등 TV 제조사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대형마트가 ‘이마트’(이마트), ‘초이스L’(롯데마트) 등 자체 브랜드(PB·Private Brand) 아래 취급하는 품목과 매출액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마트는 1만5000개의 상품을, 홈플러스는 1만3000여 개의 상품을 해당 브랜드를 붙여 판다.

국내에는 아직 없지만 외국에는 가구, 장난감 등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소매업체들도 있다.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 미국의 완구 및 아동용 의류 소매판매 매장 토이저러스(Toys R Us) 등도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가져다 파는 유통업체다.

○ 제조업체 살길은 차별화뿐

이들의 공통점은 물건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건비가 싼 지역의 제조업자로부터 물건을 받아다 자체 브랜드를 붙여 판다. 유니클로, H&M 등 의류 브랜드는 본사에서 디자인만 하고 제조는 방글라데시 중국 파키스탄 터키 등 인건비가 싼 나라에 맡긴다. 대형마트 상품기획자(MD)는 좋은 물건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지만 브랜드력이 약해 판매가 부진한 중소기업을 찾아다닌다.

이런 변화는 제조업체의 힘이 강했던 20세기의 산업구조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20세기는 제조업체가 직접 자신의 브랜드 상품을 만들어 파는 시대였다. ‘백설’표 밀가루는 CJ제일제당이 만들었고 ‘태화 고무장갑’은 태화라텍스가 만들었다. 존슨앤드존슨의 ‘베이비파우더’나 P&G의 ‘아이보리’ 비누 등 제조업체 브랜드들은 전 세계 시장을 장악했었다.

그러나 공룡 유통업체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고 있다. 유통업의 힘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의 경우 유통업자의 PB 상품 비중이 30∼40%에 이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PB 상품이 싼 가격을 무기로 내세우는 한 경기 불황 속에서 유통업체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영균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는 “특히 업계 선두주자가 아닌 3, 4위 제조업체는 유통업계의 PB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제조업이 유통업에 예속되지 않는 방법은 개발을 통한 차별화뿐”이라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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