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수장들, 카페베네-NYT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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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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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업계 벤치마킹 바람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은행장,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 등 금융업계의 리더들이 이종(異種)업계 벤치마킹에 푹 빠졌다. 이들은 신문사, 커피회사 등 금융회사와 무관해 보이는 다른 업종군 회사가 지닌 강점을 자신의 회사에 옮겨 심는 이종교배에 적극 나서고 있다.》
○ IT업체 교류로 혁신 아이디어 찾아

10월 초 스페인 2위 은행인 BBVA와 전략적 제휴를 한 이팔성 회장은 BBVA의 정보기술(IT)부서 운영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 비용 절감을 위해 IT본부를 인도에 두는 많은 금융회사와 달리 BBVA의 IT부서는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았다.

구글, 애플 등 IT업체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신상품 개발, 고객 응대법 등 은행에 쓰일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으라는 프란치스코 곤살레스 BBVA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BBVA에서 IT부서는 전략, 재무 못지않은 주요 부서로 대우받고 있다.

이 회장은 “이종업체에서 배울 점을 찾는 개방적 자세, IT부서를 한직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가 스페인의 변방은행이던 BBVA를 세계 35위 은행으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조만간 우리금융의 IT 자회사 우리에프아이에스의 직원들을 실리콘밸리로 파견하기로 했다.

김정태 은행장은 소비재업체의 마케팅 비결을 배우기 위해 2008년부터 김선권 카페베네 사장,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등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

김 행장은 김선권 사장으로부터 ‘소호(SOHO·Small Office Home Office)’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자영업자 대출에 주력하지 않던 하나은행은 9월 초 카페베네 가맹점 사업주에게 신용으로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대출상품을 내놓았다. 소비재업체 대표들은 소통을 통해 금융권의 보수적인 문화를 바꾸라는 조언을 했고, 김 행장은 직원들을 상대로 마케팅 달인들의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직원들과 격의 없는 만남을 자주 갖게 됐다.

2009년 미국 뉴욕타임스(NYT)를 방문한 정태영 사장은 NYT 사옥에 설치된 모니터에 독자들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현대카드 본사 로비에 ‘통곡의 벽’을 설치했다. 10인치 안팎의 액정표시장치(LCD) 화면 60개가 일렬로 늘어선 이곳에는 ‘영업 행태가 마음에 안 든다’ ‘수수료가 높다’는 고객들의 불만이 쉴 새 없이 지나간다. 정 사장은 “신문사처럼 고객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라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도 “때로는 휴대전화, 아이스크림 판매 전문가가 소매금융 전문가보다 은행 고객들의 심리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금융회사 근무 경험이 없는 IBM, 아우디, 삼성물산 출신 인재들을 영입했다”고 전했다.

○ 이종업계 벤치마킹의 이점은?

경영 전문가들은 금융권의 이종업계 벤치마킹의 배경으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금융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씨티, 리먼브러더스 등 세계적 금융회사도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점을 꼽는다.

동종업계와 달리 이종업계의 기업은 정보 공유에 우호적이라는 점도 거론된다.

21세기 기업 간 경쟁은 소속 업종의 구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자동차와 휴대전화가 경쟁상품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소니의 경쟁자는 삼성전자가 아니라 페이스북과 싸이월드일 수 있다”며 “소니 게임기보다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시간이 많다면 삼성전자 게임기보다 훨씬 위협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금융위기 이후 1등 금융회사를 따라 하는 것도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되던 금융계에서도 급진적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동엽 연세대 교수는 “진정한 혁신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품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익숙한 상품을 조합해 새로운 상품으로 탄생시킬 때 일어난다”며 “앞으로도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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