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中企 적합품목제’ 악용 경쟁사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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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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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협력사 내세워 대리전… 외국계도 덩치 키우려 신청

일부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중견기업들이 경쟁사의 시장 진입 혹은 확장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중소기업 적합품목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들과 거래하는 중소업체를 앞세워 경쟁 대기업과 대리전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업의 무차별적 시장 진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중소기업 적합품목제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8일 LG하우시스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적합품목 조정협의체에 처음 나서면서 적합품목 신청을 낸 중소기업 Y사와 함께 판유리를 만드는 대기업인 KCC, 한국유리공업 임원들이 나란히 참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전유리와 판유리 가공품을 중기 적합품목으로 지정해달라고 동반성장위에 신청서를 낸 Y사는 한국유리공업의 판매를 대리하는 업체다. Y사와 함께 적합품목 신청서를 제출한 나머지 24개사도 대부분 KCC 혹은 한국유리공업의 판매 대리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창호업계 1위인 LG하우시스는 현재 국내외에서 판유리를 사 이를 코팅유리 혹은 복층 유리제품으로 가공해 팔고 있다. 내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연산 1000만 m² 규모의 코팅(로이)유리 공장을 울산에 짓고 있다.

유리업계 관계자는 “LG하우시스가 내년부터 복층 유리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KCC와 한국유리공업이 자신들의 판유리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대리점 업체들을 내세워 적합품목 신청을 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KCC와 한국유리공업 등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판유리산업협회는 LG하우시스와 사전 협의하지 않고 8월 말 강화유리와 무늬판유리, 코팅유리를 제외한 10여 개 가공유리를 적합품목으로 지정해 줄 것을 동반성장위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KCC 관계자는 “KCC는 판유리 가공사업에 새로 진출할 생각이 없다”며 “LG하우시스를 견제하기 위해 적합품목 신청을 냈다는 얘기도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중기 적합품목제의 규제를 받지 않는 외국계 기업이 경쟁사인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적합품목 신청을 낸 사례도 있다. 올 5월 디지털도어록제조사협회는 디지털 도어록을 중기 적합품목으로 지정해 달라고 동반성장위에 신청했다. 삼성전자 계열사인 서울통신기술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문제는 회원사가 5개뿐인 이 디지털도어록제조사협회에 서울통신기술의 최대 경쟁사인 외국계 기업 아이레보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아이레보는 스웨덴의 아사아블로이가 지분 100%를 인수한 기업으로, 아사아블로이는 최근 제일인더스트리와 도어클로저 등 국내 기업들을 연이어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우고 있다.

동반성장위도 이런 폐단을 인식하고 경쟁사의 사업 확장을 막으려는 수단으로 중기 적합품목제를 악용하면 이를 직접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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