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에 현금 없는 사람은 택시도 타지 말란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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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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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액카드결제 거부 허용 추진’ 일파만파

서울 서대문구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장모 씨(55)는 지난달 한 고객이 1500원짜리 고무장갑을 사고 신용카드를 내밀자 “그냥 현금으로 내라”고 했다. 고객이 “요즘 누가 현금을 들고 다니느냐”고 화를 내 큰 싸움으로 번졌다.

내년부터 신용카드 가맹점이 1만 원 이하의 소액카드결제를 거부할 수 있게 되면 이 같은 다툼은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금융당국이 이명박 대통령의 관심이 높은 서민 영세 자영업자 대책 마련에 치중하다가 전체 소비자의 편익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 서민대책 고민하다 악수(惡手)

1만 원 이하 소액 카드결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번 대책은 백화점 대형마트 등 대형업체와 차별적으로 적용돼온 수수료 체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중소상인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카드사들은 대형업체에는 1.5% 정도의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하면서 음식점 미용실 등 자영업자들에게는 2.7%에 이르는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다. 소액결제는 수수료 부담이 큰 자영업자뿐 아니라 1건당 150원 정도의 결제비용을 대야 하는 카드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카드 수수료 체계가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금융당국은 카드사와 자영업자들의 이해득실이 엇갈려 메스를 직접 대기 힘들었다. 금융위는 소액결제대금이 7월 기준 1조 원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른 만큼 현금결제를 유도해 카드수수료 부담을 줄이면 중소상인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봤지만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성급하게 도입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 택시비 없는데 카드 안 되면…

금융위의 대책이 발표되자 시민들은 ‘소비패턴의 변화를 읽지 못한 정책’이라는 부정적 반응을 쏟아냈다. 야근이 빈번해 대중교통이 끊긴 뒤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허윤희 씨(39·서울 양천구)는 “택시에 카드단말기가 설치돼 있어 8000∼1만 원의 택시비를 카드로 결제해왔는데 ‘혹시 택시운전사가 소액결제를 거부하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김승만 씨는 “잔돈이 불편해 소액이라도 대부분 카드로 결제했는데, 내년부터는 호주머니에 동전이 가득차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중소상인이나 카드업계에서도 소액결제 거부 방침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대부분 점포에 카드 단말기가 보급돼 있는데, 1만 원 이하에만 카드결제를 거부하면 소비자와 점주 사이에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만큼 전체 수수료율을 1.5%대로 낮추는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폭발한 음식점 주인들

급기야 음식점 업주들은 18일 점심 영업을 중단하고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카드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를 갖기로 했다. 이들은 2.7%에 이르는 현행 카드 수수료율을 1.5%대로 인하하고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 인원을 완화해 줄 것을 촉구할 방침이다. 연간 매출이 1억 원 수준인 음식점에 카드 수수료율을 1%포인트 내리면 1년에 120만 원 정도 절감할 수 있고, 음식업종 전체로는 5000억 원 이상을 절약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계에서는 소액 카드결제 거부 허용 방침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큰 만큼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액이라도 현금영수증이 발급돼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며 “카드사가 수수료율을 대폭 내리기 쉽지 않은 만큼 현실적인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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