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이자 적’ 삼성-애플의 애증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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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6일 11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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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최대 고객이자 가장 강력한 맞수
이병철-이건희-이재용 3대에 걸친 인연

1983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호암 집무실에서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을 만나고 있는 스티브 잡스. 동아일보 DB
1983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호암 집무실에서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을 만나고 있는 스티브 잡스. 동아일보 DB
"애플은 참 배울 게 많은 회사이고, 잡스는 그야말로 천재예요, 천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6일 타계한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고(故) 스티브 잡스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이 사장은 최근까지도 1년에 한두 번은 스티브 잡스를 만나 온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가 사망하면서 고인과 고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 및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으로 이어져 온 삼성 3대(代)와의 끈끈한 인연, 그리고 삼성의 최대 고객이자 경쟁자인 애플 두 회사의 질긴 애증 관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성 등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28년 전인 1983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호암 집무실에서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을 만났다.

타계하기 4년 전이던 당시 호암은 일흔세살의 노구를 이끌고 삼성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는 필생의 도전에 나선 때였다.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스물여덟의 새파란 젊은 사업가였다.

호암은 그 자리에서 "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라며 "앞으로 IBM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지금 하는 사업이 인류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고 인재를 중시하며 다른 회사와의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을 3대 경영철학으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애플이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으로 떠오르면서 이건희 회장도 스티브 잡스를 종종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뒤를 이어 이재용 사장도 미국 애플 본사를 종종 방문했고,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샘플을 직접 가져와 특징을 꼼꼼히 설명해주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애플과 삼성은 1980~1990년대 삼성과 소니의 관계처럼 최대 협력업체이자 가장 큰 라이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의 가장 큰 고객은 소니였지만, 애플이 아이폰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핵심 칩 등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의 최대 납품처로 떠올랐다.

삼성전자의 작년 매출 154조6303억원 가운데 매출 비중은 소니(4.4%, 6조8037억원), 애플(4.0%, 6조1852억원), 델(2.2%, 3조4018억원), HP(2.1%, 3조2472억원), 베스트 바이(2.0%, 3926억원) 순으로 소니가 애플보다 6185억원 많았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올해 상반기 실적 공시 때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애플이 급격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소니를 제치고 최대 구매처로 등극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애플은 올해 삼성전자로부터 78억달러(8조6000억원) 상당의 부품을 사들여 60억달러 안팎을 구매할 소니를 처음으로 제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과 애플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애플이 지난 4월15일 삼성전자에 대해 스마트폰 특허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고 꼭 일주일 만에 삼성전자가 애플을 맞제소하면서다.

3월 초 애플이 아이패드2를 출시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삼성을 '카피캣'(모방자)이라고 모욕하고 삼성전자 임원을 조롱했을 때만 해도 삼성전자는 직접 대응을 삼가고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애플이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라는 점에서 구태여 애플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애플이 삼성을 실제 제소하자 이건희 회장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처음으로 정기출근한 4월21일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고 밝혔고, 다음날 애플을 전격 맞제소했다.

이 회장은 당시 "기술은 앞서가는 쪽에서 주기도 하고, 따라가는 쪽에서 받기도하는 것인데…"라며 애플에 대한 섭섭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 애플과 삼성의 소송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삼성은 애플이 아이폰4S를 내놓자마자 스티브 잡스 타계 하루 전날인 5일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밀라노 법정에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이 맞소송을 계기로 양사 협력 관계에 금이 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지만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전자·IT 업계의 관행상 글로벌 메이커 간 상호 협력과 견제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라는 게 업계 공통된 시각이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메모리칩, 디스플레이 등 가장 중요한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특히 현재로서는 애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두뇌에 해당하는 칩의 유일한 납품업체이며 애플은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는 두 회사가 타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으나 삼성 측은 당장 소송을 취하하는 등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어떤 언급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아울러 최지성 대표이사 부회장 명의의 조의문을 내고 스티브 잡스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최 부회장은 "고인은 세계 IT 산업에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을 이끈 천재적 기업가였으며, 그의 창조적 정신과 뛰어난 업적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을 계기로 삼성과 애플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 IT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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