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구글의 속도전’ 기대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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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에서 구글이 야심 차게 내놓은 크롬북이 생각만큼 빠르지 않고, 변화의 속도도 더딘 듯하다고 썼다가 여러 반대 의견을 들었습니다. 특히 구글코리아 관계자분들은 크롬은 빠른 속도를 강조하는 운영체제(OS)인데 느리다니 의아하다는 의견도 주셨습니다.

이 인식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나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발간하는 테크놀로지리뷰(TR)에 실린 ‘슬로모션 인터넷’이란 기사를 봤습니다. 구글이 인터넷이 충분히 빨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터넷에는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요소가 너무 많아 구글의 꿈은 불가능하리라는 전망이었습니다. 인식의 차이는 이런 믿음의 차이에 있었습니다.

구글이 원하는 속도란 인터넷을 TV처럼 쓸 수 있는 속도를 말합니다.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면 단 1초 안에도 SBS에서 KBS, EBS를 거쳐 MBC까지 대충 훑어볼 수 있는 것처럼 웹페이지도 그 수준으로 빠르게 넘겨봐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현실은 반대입니다. 웹페이지 하나를 열어보려면 광고와 그림이 많은 페이지의 경우 3, 4초도 넘게 걸립니다.

이는 구글에 심각한 문제입니다. 구글의 실험 결과 웹페이지가 열리는 속도가 0.1∼0.4초 늘어나면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하는 빈도가 0.2∼0.6% 감소합니다. 검색어 입력은 곧 검색 광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느린 인터넷’이란 구글에는 매출 감소의 원인이 됩니다. 이들이 속도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인터넷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구글의 노력은 필사적이면서 처절합니다. 우선 구글은 자체 서비스 속도를 높였습니다. 웹서비스에서 그림을 최소화하고 광고를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건 기본입니다. 동영상을 보고(유튜브), 문서를 만드는(구글 문서도구) 복잡한 서비스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크롬이란 웹브라우저를 직접 만들었고, 이 크롬 웹브라우저만 깔아서 인터넷만 최대한 빨리 쓸 수 있는 크롬북이란 노트북도 선보였습니다.

또 크롬을 홍보하면서 ‘가장 빠른 웹브라우저’임을 강조했습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파이어폭스, 사파리 등 경쟁 웹브라우저를 속도전에 뛰어들게 해 전체 인터넷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죠.

통신사도 건드렸습니다. 통신사가 사업성이 낮다고 잘 들어가지 않는 시골 지역을 중심으로 초당 1Gb(기가비트)를 전송하는 광통신망 사업을 벌인 게 대표적입니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초고속인터넷보다 100배 빠른 속도를 내세워 통신사를 자극한 뒤 소비자에게 더 빠른 인터넷 수요를 일으키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속을 태우는 병목은 아직도 여기저기 존재합니다. 약 40년 전 등장한 기술이 여전히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이죠. 세계 각국이 이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표준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낡은 표준기술로 몇 차례 대형 보안 사고가 터지자 거꾸로 병목만 늘리는 검문소 격인 방화벽 같은 보안장치만 늘어갑니다. 그럼에도 구글은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합니다.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입니다. 이 불가능한 꿈이 이뤄지면 구글도 이익을 보고 인터넷을 쓰는 세계의 모든 누리꾼이 이익을 봅니다. 그들의 도전이 무모해 보이지만 멋져 보이는 이유입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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