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Life]風水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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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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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액 자산가를 위한 PB 특별한 서비스
자녀 이름지어 주고, 공장용지 잡아주고… 풍수전문가 고용하거나 직접 배우기도


《초고액 자산가(VVIP)를 공략하기 위한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풍수(風水)’가 뜨고 있다. 주요 은행은 풍수 전문가를 고용해 부자 고객이 부동산 매매를 할 때 적합한 입지를 골라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풍수지리 설명회도 연다. 기업은행은 2006년부터 풍수 전문가인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을 모셔 VVIP 고객들에게 풍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고객들의 주거지나 공장 용지만 봐주는 데 그치지 않고 최고경영자(CEO) 집무실의 배치, 사무실 내 물건 위치 등도 일일이 챙겨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일부 고객이 이제는 먼저 상담을 요청할 정도로 인기다. 하나, 국민, SC제일은행 등도 고액 자산가들을 상대로 풍수 강연회를 개최한다. 심지어 일부 프라이빗뱅커(PB)는 풍수지리나 명리학 등을 직접 배워 자산가들을 상대하고 있다.》
○ 풍수 마케팅, 왜 부자 관심 끄나

풍수 마케팅이 각광받는 이유는 부자들이 이를 재테크의 수단이자 생활의 일부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소규모 자산가나 일반인과 달리 VVIP 고객은 대부분 본인이 직접 사업에 나서 부를 일궜다. 당연히 사옥 이전이나 공장 개설에 풍수지리를 많이 참고하고 사업이 잘되지 않을 때는 풍수의 영향이 크다고 믿는다. 과거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부동산 투자로 막대한 돈을 번 뒤에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허름한 한보 사옥을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 사옥이 길지(吉地)라는 한 역술인의 조언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풍수 마케팅이 VVIP 고객의 유형에 관계없이 고루 좋은 평가를 받는 서비스라는 점, 절세 및 상속 상담처럼 어느 은행의 PB나 내세우는 고만고만한 서비스와 달리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시중은행의 한 PB는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떠올랐던 전시회 관람, 패션쇼, 와인파티 등은 VVIP 고객의 유형, 성별, 학력, 재산 증식방법 등에 따라 선호도 편차가 큰 편”이라며 “반면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풍수 서비스는 대부분의 고객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아 풍수와 명리학을 배우고 있다는 이 PB는 “손주가 태어나면 작명을 의뢰하는 고객들도 있는데 이에 관한 의견을 들려주면 무척 좋아한다”며 “날로 치열해지는 PB업계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금융 지식이나 골프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 부자와 일반인의 관심사, 이게 다르다

풍수에 관한 부자와 일반인의 문의 내용은 뭐가 다를까. 고제희 학회장은 일반인은 부의 ‘축적’에, VVIP들은 부의 ‘수성’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규모 자산가나 일반인들은 ‘어느 아파트, 어느 상가를 사야 더 부자가 되느냐’고 물어보는 반면 VVIP는 ‘이 땅 사려고 하는데 흉한 기운이 혹시 내 사업에 악영향을 끼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흉한 기운이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이 해당 용지에 공장을 짓거나 건물을 사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그 기운을 누를 수 있는지 문의하는 부자도 많다. 이때 고 학회장은 연못이나 나무숲을 만들거나 건물 이름을 바꾸는 식으로 흉한 기운을 덮으라고 조언해준다. 이른바 비보(裨補)풍수다.

그는 묘지를 둘러싼 풍수 문의에서도 부자와 일반인들의 차이가 뚜렷하다고 밝혔다. 일반인들은 묘지 이장 문의를 많이 하고 실제로 이장도 하지만 VVIP 고객은 묘지 이장에 관해 거의 묻지 않으며 이를 단행하는 사례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고 학회장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 오래전부터 묘지 자리를 마련해뒀다는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장이 형제간 재산 다툼으로 번질 소지가 많기 때문”이라며 “이장 후 한쪽으로만 좋은 기운이 쏠리면 나머지 형제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초고가 주택에서 풍수 마케팅 활발

VVIP를 공략하기 위한 풍수 마케팅은 건설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부동산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의 주거지로 공급되는 초고가 주택은 꾸준히 늘어나면서 많은 건설사들이 풍수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입지조건, 학군, 조망 등의 장점을 내세워 집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명당 마케팅’을 강조해 자산가들을 공략한다는 뜻이다.

SK건설이 경기 판교신도시 운중동에 지은 최고급 단독주택 ‘산운 아펠바움’과 고급 빌라 ‘운중 아펠바움’은 운중동 일대가 큰 인재와 부자가 끊임없이 배출되는 ‘선인독서(仙人讀書)’형 명당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쌍용건설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지은 고급주택 ‘오보에힐스’도 금닭이 알을 품고 있어 이것이 후손의 영광으로 부화된다는 ‘금계포란(金鷄抱卵)’형 입지임을 강조했다.

산운 아펠바움의 입지 평가에도 참여한 고학회장은 “VVIP 고객들은 가족이 살 주택을 결정할 때 지관을 직접 동원해 분양을 받는다”며 “자신의 가족과 사업의 번영을 위해 풍수를 철저히 따지는 사람들이 바로 자산가”라고 설명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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