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로금리 2년 유지”]‘최후카드’ 아낀 버냉키 “필요하면 추가조치”로 시간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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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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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은 일단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까지 해소한 것은 아니다.’(월스트리트저널)

미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공포를 해소시켜 줄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버냉키 의장이 그나마 제 몫을 해줬다.

버냉키 의장은 달러를 풀어 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해주는 ‘3차 양적완화(QE3)’라는 마지막 카드를 남겨두면서도 글로벌 증시를 지배했던 시장의 공포를 잠재웠다. 필요하면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그의 말에 시장이 신뢰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안정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 버냉키의 속내는 “추후 3차 양적완화 조치 취할 수도”

미 연준은 물론이고 어느 나라 중앙은행에서도 금리 동결 시기를 명시적으로 못 박은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시장과 끊임없이 줄다리기와 신경전을 펼쳐야 하는 통화당국으로서 시기를 못 박는 것은 사실상 ‘백기투항’과 같은 금기사항이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은 이 원칙을 거꾸로 활용해 시장 참여자들의 허를 찌르면서 효과를 극대화했다.

금리동결 시기를 연장하는 조치는 그동안 시장이 예상해온 3, 4가지 조치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의 것이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2013년 중반까지’로 금리동결 시기를 명시하면서 추후 통화정책의 기조가 앞으로 2년간은 긴축이 아니라 완화가 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밝혔다.

연준이 이런 ‘깜짝 카드’를 결정하는 데는 많은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통화결정문에 버냉키 의장을 포함해 7명의 이사는 찬성했지만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는 리처드 피셔, 나라야나 코철라코타, 찰스 플로서 이사 등 매파 3명은 끝까지 반대했다. 이들은 연준이 그동안 제로금리 유지 기간으로 표현해온 ‘향후 상당한 기간’이라는 문구를 그대로 유지하자고 막판까지 주장했지만 버냉키 의장이 반발을 눌렀다. 이런 과정들이 알려지면서 시장은 버냉키 의장의 의지를 더욱 확실히 믿게 된 셈이다.

버냉키 의장은 또 제1, 2차 양적완화 조치가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통화결정문에서 “수집된 정보는 올 들어 지금까지 경제성장세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느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6월 회의 이후 발표한 표현보다 훨씬 강하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면서까지 경기 둔화세를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앞으로 경기를 살리는 데 통화당국이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히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그는 향후 경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연준은 결정문에서 “물가안정의 범위 내에서 더 강력한 경제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수단의 범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상황을 보아가며 언제든지 QE3 등 특단의 대책을 시행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 버냉키에게 신뢰를 보낸 시장

버냉키 의장의 결정이 알려진 9일(현지 시간) 오후 2시 15분경 투자자들은 그가 QE3를 발표하지 않은 데 대해 실망했다.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몇 분 만에 200포인트가 빠졌다. 하지만 그의 결정을 꼼꼼히 분석한 전문가들이 결정문에서 나타난 버냉키 의장의 속뜻을 시장에 전하자 다우지수는 급등하기 시작했다. 2009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인 4% 상승으로 장을 마쳤다.

이어 개장한 한국 등 아시아 증시도 오름세를 보이며 마감했고 버냉키 의장의 결정이 있기 전에 마감한 유럽 증시도 상승세를 보였다.

JP모건체이스의 마이클 페롤리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연준의 결정은 연준이 추가 완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점을 알리는 전조가 됐다. 시장은 그를 신뢰했다”고 평가했다.

○ 그래도 가시지 않는 불안감

시장의 관심은 이제 26일 미국 오하이오 주 휴양도시 잭슨홀에서 열리는 세계중앙은행 총재 연찬회에 쏠리고 있다. 버냉키 의장이 이곳에서 QE3를 발표할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는 작년 8월 이곳에서 2차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한 전력이 있다.

QE3는 불안한 시장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을 엄습했던 위기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시장의 혼란은 경제주체들이 미국과 유럽의 부채 문제로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불안감을 가졌기 때문이므로 연준이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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