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철강-반도체-車업종, 5년간 전기료 6조 할인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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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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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업 충분히 성장… 이젠 요금 올려야”

지난달 26일 정부과천청사 지식경제부 기자실. 전기요금 인상안을 설명하던 정재훈 지경부 에너지자원실장은 “2008년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A사의 국내 연구소를 둘러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극한 기온에서도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이 연구소에서는 엄청난 양의 전기를 써 영하 40도∼영상 40도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있더라는 것이다. 정 실장은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이 원가에도 못 미칠 정도로 싸다 보니 해외 기업이 한국에서 이런 실험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1일부터 산업용 요금을 평균 6.1% 올렸지만 아직도 싸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올린 전기요금 체계에서도 산업용은 여전히 원가의 92% 수준이다. 한국전력공사는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고 이 손실은 재정, 즉 국민 세금으로 메운다. 1970년대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낮게 책정한 산업용 요금을 이제는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3일 동아일보가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으로부터 받은 ‘2006∼2010년 국내 제조업의 산업용 전력사용량과 요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제조업 전력의 62% 이상을 사용하는 석유화학과 반도체, 철강, 자동차 업종은 5년간 5조9061억 원을 할인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4대 제조업종이 원가 수준의 요금을 낸다면 추가로 지불했어야 하는 금액이다.

구자윤 한양대 교수(전기공학)는 “이미 국내 대기업 주주의 절반은 외국인인데 산업의 발전을 위해 국민세금으로 전기요금을 지원한다는 논리는 빈약하다”며 “단계적으로 산업용 요금을 올려 에너지 사용을 효율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혜택은 많은데 부가가치 창출은 부진

분석 결과 최근 5년간 4개 업종은 평균적으로 원가의 89% 수준의 전기요금을 지불했다. 석유화학 부문은 이 기간에 제조업 전력의 21%를 사용하면서 2조218억 원의 할인을 받았다. 철강산업도 제조업 전력의 18%를 써 사실상 1조7420억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석유화학과 철강산업은 원가 이하의 전력을 가장 많이 공급받았지만 국민경제에 얼마나 이익을 냈느냐를 뜻하는 부가가치 창출률은 국내 제조업 평균(19.9%)에 못 미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석유화학업과 철강업의 부가가치 창출률은 모두 17% 수준으로 미국 등 선진국보다 최대 21.9%포인트 낮다.

같은 기간 반도체와 자동차 업종은 각각 1조4008억 원, 7415억 원의 혜택을 받았다.

○ 값싼 전력이 에너지 과소비 유도


전력분야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이 석유화학이나 철강업처럼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위주로 성장한 것은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의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한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용 전력 가격은 kWh당 0.058달러로 일본(0.158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미국(0.068달러), 프랑스(0.107달러), 영국(0.135달러) 등 다른 주요 국가보다도 싸다. 산업용 전력의 판매량은 국내 전체의 절반이 넘는 53.6%에 이르지만 판매수익 비중은 47.7%에 그친다. 이에 따라 주택용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요금을 받아 산업용 전기요금을 보조해준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영탁 한밭대 교수(경제학)는 “일부에서는 싼 전기요금 덕분에 외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해외기업이 국내에 들어와 전기를 펑펑 쓰는 것을 언제까지 용인해야 하느냐”며 “산업용 요금의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창출 효과가 거의 없이 전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해외기업의 인터넷데이터센터(IDC)가 국내에 설립되는 것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산업용에 시장가격 적용해야

정부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싸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급격하게 올리면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대기업들에 원가 수준의 요금은 큰 부담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전체 제조업의 원가에서 전력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1.17%로, 전기요금을 1% 올린다 해도 추가로 늘어나는 원가부담은 0.0117%에 그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성인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원리를 반영해 산업용 전기요금체계를 개편한 뒤 정책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중소기업 등에는 보조금을 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방법 등으로 화석연료 위주의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근본 대책도 필요하다. 원유나 천연가스 등을 정세가 불안한 중동 지역에서 주로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에너지 수입이 어려운 상황이 오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기업도 대지진 이후 핵심기술을 뺀 에너지 과소비 분야를 해외로 옮기고 있다”며 “전력난을 겪어본 경험이 없는 한국 기업은 일본 같은 상황이 오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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