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MRO 금지했지만 할수 있는 中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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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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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살리기’ 뜻 따로 결과 따로

정부가 편법적인 부(富)의 대물림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대기업의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계열사들과 공공기관의 거래를 금지시켰지만 대기업을 대신할 중소 MRO 업체를 찾지 못해, 계약 해지 한 달이 넘도록 후속 MRO 입찰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중소업체와 계약할 경우 대기업 MRO보다 비용이 10∼15% 비싸진다는 점도 고민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소모성 물품을 구매하는 MRO 시장에 지역 영세업체들이 들어오도록 문호를 넓힌다는 방침이지만 정작 중소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MRO 시스템은 개발도 되지 않은 상태다. 조달청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MRO 시스템은 2009년 정부로부터 경영혁신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적기조달, 비용절감 측면에서 획기적인 시스템”이라며 “공정사회 구현 등 정부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중소기업들이 바로 대기업을 대체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은 향후 공공기관들이 소모성 자재를 구입할 때 대기업 계열 MRO 회사를 배제하는 내용의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이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 법은 공공기관이 소모성 자재를 구입할 때 중소 납품업자와 우선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내용이 뼈대다. 대기업 계열 MRO 회사들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문구류 등 공공기관 소모성 자재 납품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 MRO 계열사와 직접 계약을 한 한국전력과 강원랜드 등 지식경제부 산하 6개 기관 가운데 네 곳은 이미 지난달 계약을 해지했으며 나머지 2개 기관도 이달까지 모두 계약을 중도 해지할 예정이다. 또 정부 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를 통해 공공기관들의 소모성 자재를 위탁 판매하고 있는 조달청은 10월 22일 대기업 계열 MRO 업체인 서브원(LG), 아이마켓코리아(삼성)와의 납품계약이 끝나는 대로 중소기업과 새로운 계약을 할 계획이다.

하지만 조달청은 물론이고 계약을 해지한 공공기관들은 구체적인 후속 MRO 계약 입찰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 가운데 MRO 시스템을 갖춘 업체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MRO 계열사들은 공공기관들이 필요한 소모성 자재를 주문하면 하청계약을 한 납품업체를 통해 조달하는 자체 MRO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문구류나 산업용 자재 등 필요한 물품을 한곳에서 일괄 구매할 수 있어 비용을 10∼15% 절감할 수 있는 데다 촘촘한 유통망까지 갖추고 있어 적시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할 수 있다. 인터넷쇼핑몰 같은 형태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 자체 MRO 시스템을 갖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중기청 산하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중소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체 MRO 시스템 개발 예산을 신청했지만 시스템 개발은 빨라야 내년쯤에나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기업의 기준이 모호한 것도 공공기관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지역 영세 기업들이 공공기관 MRO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부로부터 비용절감 압력을 받고 있는 공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보다 납품단가가 높은 영세 기업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조달청 역시 나라장터 입찰 참가 기준을 연 매출 200억 원에서 20억 원 수준으로 낮추고 지역별로 입찰을 진행해 여러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역 영세 기업들을 배려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침은 아직 세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자칫 대기업이 빠진 공공기관 MRO 시장을 소수의 중견기업이 독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 MRO 계열사와의 계약을 중도 해지한 공공기관들은 비싼 납품가격을 감수하고 자재가 필요할 때마다 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물품을 조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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