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퍼런 ‘이건희의 칼’…삼성 인사태풍 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일 12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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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연말인사' 전례를 깨고 과감한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에 들어섰다.

이건희 회장이 '조직에 만연한 비리'를 질타하는 등 연일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가운데 나온 이례적 인사여서 '삼성 체질'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은 아닌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삼성은 1일 삼성전자 부품사업간 시너지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메모리와 시스템 LSI, LCD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 솔루션(DS) 사업 총괄'을 신설하고, 권오현 반도체 사업부 사장을 신임 총괄사장에 임명한다고 밝혔다.

LCD 사업부장인 장원기 사장은 최고경영자(CEO) 보좌역으로 물러났다. 사실상 경질된 셈이다.

신종균 무선사업부 사장은 디지털이미징 사업부도 함께 관장하도록 했다.

통상 연말 정기 인사 이외에는 조직 진용을 바꾸는 일이 없던 점을 감안하면 지극히 파격적이다.

이인용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은 이에 대해 "LCD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그보다 LCD 사업의 조기 정상화가 더 근본적인 이유고, 반도체 사업부장이 LCD를 직접 담당하며 시너지를 높여 사업 위기를 빨리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안팎에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29일 남아프리카로 출국하기 이전 삼성전자의 잠정 실적을 보고받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삼성전자는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예상치를 밑도는 저조한 실적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1분기 2조9500억원으로 아예 3조원 밑으로 내려갔던 영업이익이 2분기에도 4조원 대를 회복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3조5000억원 수준에 불과할 것이란 게 증권가의 지배적 예측이다.

특히 가격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 LCD 사업이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삼성전자의 경우 LCD사업이 여러 군데로 쪼개져 있는데다, 부품 사업부 내에서도 반도체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어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이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돼 왔다.

게다가 일부 해외 구매선의 경우 세트와 부품사업을 병행하는 삼성전자의 사업 방식을 문제 삼아, 관계가 껄끄러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실적이 부진한 LCD 사업 부문에는 사장 교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고, 반도체 사업부와 합쳐 과감하게 부품 분야에 힘을 실어줘 조직 내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 나온 것이다.

이 부사장은 이와 관련, "부품 사업이 반도체와 LCD의 별도 사업부로 돼 있는데, 이를 사업 총괄로 묶고 반도체 총괄이 담당하면 부품사업의 틀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해외 거래선에서 우리가 세트와 부품을 하는 것에 대해 예민해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트와 부품 간에 독립성 강화 조치를 취함으로써 신뢰도를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인사로 권오현 사장에게 힘이 한층 실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명실상부한 부품 사업 총괄의 위치에 오른 데다 LCD 사업을 부활시키라는 특명까지 받은 만큼, 전자 전체를 총괄하는 최지성 부회장으로부터 일정한 권한을 위임받아 과감한 사업 결정을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권 사장이 부품 분야 모든 의사 결정을 담당하고, 권 사장과 최 부회장간 보고라인으로 결제선은 짧아지는 등 상당한 권한 위임이 이뤄질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사장은 이에 대해 "부품사업 총괄이 신설됨으로써 최 부회장의 권한이 일부 위임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보고라인이 더 단축돼 의사결정 구조가 빨라지고 효율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내부적으로는 인사 자체도 충격이지만, 이번 인사가 이 회장이 삼성 테크윈 감사 이후 '쇄신'의 칼을 빼들고 처음으로 단행한 인사라는 점에 더욱 긴장하는 분위기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과감하게 조직의 고삐를 조인데 이어, 적어도 1년은 '두고 본다'는 인사 원칙까지 수정하며 실적에 따라 바로 책임을 묻는 빠른 의사 결정으로 긴장의 강도를 팽팽히 높였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계열사들에 대한 경영진단과 감사팀 보강 작업이 마무리되면 그룹 차원의 '인사 태풍'이 몰아치고, 전체적으로 '젊고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게 재계 안팎의 대체적인 예측이다.

조직 쇄신에 인사 스타일마저 변했으니 이 정도 수준이면 사실상 새로운 경영 노선으로 접어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삼성측은 일단 "원칙적으론 정해진 시기 없이 인사는 할 수 있지만, 당분간 사장단이 포함된 후속 인사는 없을 것"이라며 8월 인사설 등을 일축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과감한 그룹 운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며 "조직문화 쇄신에 인사 스타일마저 변했으니 사실상 그룹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느낌"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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