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베이비부머, 증시 큰손으로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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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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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이상 투자액 95조 육박… 퇴직-개인연금시장도 급팽창 月지급식펀드 인기 끌어

외국계 기업 임원 한모 씨(53)는 은퇴 이후에도 매달 일정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투자대상을 찾다가 채권혼합형 ‘월지급식 펀드’에 1억 원을 투자했다.

당초 한 씨는 오피스텔에 투자해 임대수익으로 은퇴 생활자금을 마련해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월지급식 펀드에 가입하면 연금처럼 매달 투자금액의 0.6%인 60만 원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데다 펀드 운용이 잘되면 투자수익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그는 “오피스텔은 임대수익률이 5%대로 떨어졌고 나중에 제값에 팔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며 “월지급식 펀드는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로 매달 고정적인 현금을 확보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한국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금융투자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급팽창하는 퇴직·개인연금 시장을 타깃으로 한 금융권의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가운데 은퇴자들에게 ‘제2의 월급통장’으로 불리는 월지급식 금융상품과 채권형펀드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증시에서는 60대 이상 ‘실버 투자자’가 큰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최고 히트, 월지급식 금융상품

월지급식 상품은 목돈을 넣어두면 곧바로 일정 수익을 매달 현금으로 지급하는 상품으로 펀드, 채권과 결합한 데 이어 주가연계증권(ELS), 자문형 랩과 연계된 상품까지 나오고 있다. 50, 60대 은퇴자의 가입이 급증하며 수천억 원의 뭉칫돈을 끌어들인 상품도 늘고 있다.

27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2009년 설정액 980억 원에 불과하던 월지급식 펀드 시장은 올 6월 현재 5600억 원 이상으로 급성장했다. 올 들어서만 15개 상품이 새로 나오는 등 총 25개 월지급식 펀드에 3786억 원이 순유입됐다.

증권사가 선보인 월지급식 상품도 날개를 달았다. 대우증권이 올 초 내놓은 ‘골든에이지’는 매달 투자원금의 0.5%를 주는 방식으로, 나온 지 5개월 만에 판매금액 2000억 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삼성증권의 ‘POP골든에그’도 작년 3월 첫선을 보인 뒤 2070억 원을 모았으며 미래에셋증권이 지난달 선보인 브라질채권 월지급식 상품도 3700억 원을 유치했다.

조기상환이나 만기 때만 수익을 주던 ELS도 매달 수익을 지급하는 구조로 변신해 인기몰이에 동참했다. 한국투자증권이 지난주 선보인 월지급식 ELS는 20억2400만 원어치가 판매됐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 업계 최초로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아 고객이 가입 때 정한 비율만큼 수익의 일부를 매달 주는 자문형 랩 상품 ‘NH 스마일랩’을 내놓았다.

박진환 한국투자증권 WM컨설팅부장은 “초고령사회인 일본은 펀드시장의 30∼40%를 월지급식 펀드가 차지한다”며 “부동산시장 침체와 저금리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베이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는 한국도 월지급식 상품 시장이 팽창할 것”이라고 말했다.

○ 60대 이상, 한국 증시 최대 큰손

주식 직접투자에서도 실버 투자자의 힘은 막강해졌다.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주식투자 인구 및 투자자별 주식보유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60세 이상이 투자한 금액은 시가총액 기준 약 95조 원으로 비중(33.7%)이 가장 높았다. 한국 증시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실버 투자자들이 주요 투자계층인 40대(66조4280억 원)와 50대(82조7880억 원)를 제치고 최대 큰손으로 올라선 것.

60세 이상의 주식투자 인구도 지난해 78만3000명으로 전년보다 17만7000명 증가했다. 40, 50대 투자자가 전년보다 각각 8만9000명, 7만8000명 줄어든 것과 딴판이다. 조완제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장은 “60대 이상은 자산규모가 크기 때문에 세금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며 “주식 직접투자가 세금에서 가장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이 주식형펀드 투자를 외면한 가운데 채권형펀드로 꾸준히 돈이 몰리는 것도 고령화 투자 트렌드를 반영한 주요 현상으로 분석된다. 채권형펀드는 지난해 약 2조6000억 원에 이어 올 들어 이달 24일까지 6600억 원의 자금을 순수하게 빨아들였다. 국내 및 해외 주식형펀드가 지난해 무려 28조, 올해 6조 원가량이 빠져나가며 ‘펀드런’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펀드리서치팀장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된 측면도 있지만 은퇴를 앞둔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 넣어두었던 자금을 채권형펀드 같은 중위험 자산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완제 팀장은 “고령화가 빠른 선진국에서 헤지펀드처럼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 인기를 끄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며 “앞으로 은퇴자의 수요에 맞춘 투자 트렌드가 시장 판도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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