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은퇴 불안감’ 세계 최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6일 2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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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김모 씨(54)는 "은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고 말한다. 1년 뒤면 업무 일선에서 물러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후선 업무에 3년간 배치돼 낮은 임금을 받는 임금피크제에 들어가야 한다. 아직 대학생인 자녀들이 가장 걱정이다. "제 연령대가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걱정이에요. (아이들에게) 전셋값이라도 대줘야 할 텐데…."

은퇴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김 씨만이 아니다. 한국인 2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은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재정적 위기(경제적 어려움)'부터 떠올려 세계에서 가장 비관적인 은퇴관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HSBC생명은 26일 이런 내용이 담긴 HSBC보험그룹의 은퇴계획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설문조사는 지난해 하반기 한국인 1096명을 포함해 미국 캐나다 중국 등 17개국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은퇴라는 단어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는 응답이 55%로 17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어 아르헨티나(52%) 폴란드(45%) 프랑스(42%) 순이었다. 17개국 평균은 32%였다. 하나HSBC생명 관계자는 한국인의 비관적인 은퇴관에 대해 "최근 한국의 가계저축비율이 급격히 감소한 것과 연관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한국인은 비관적인 은퇴관을 가진 이유에 대해 '저축이 충분치 않아서'(47%)라고 응답했다.

은퇴와 가장 연관된 단어로 '자유'라고 응답한 비율은 한국인이 34%로 14위였다. 말레이시아(69%) 중국(67%) 대만(60%) 순으로 높았으며 17개국 평균은 48%였다. 중국, 말레이시아 등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에서 은퇴를 자유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서구 선진국보다 높은 데에는 신흥국들의 빠른 경제 성장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은퇴 이후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살 것이라는 기대감은 한국인이 51%로 세계 평균인 45%보다 높았다.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는 부모 세대보다 못살 것이라는 응답이 각각 69%, 59%였다. 하나HSBC생명 관계자는 "유럽과 북미 국가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인 부모들이 은퇴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으며 이들의 다음 세대로 사는 게 경제적으로 더 어려울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이들 국가 응답자의 54%가 사회보장 정책이 과거에 더 좋았으며 자신의 세대에서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덧붙였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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