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기업, 희망을 이야기하다]<2>안산 덕흥엔지니어링의 금형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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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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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 0.1mm의 승부, 인재 키워야 마지막에 웃어”

1966년. 당시 17세의 까까머리 소년 박건필(62·현재 덕흥엔지니어링 대표·사진)은 불꽃을 내며 돌아가는 공작기계에 마음을 홀딱 뺏겼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 집 근처의 기계 공작소를 우연히 들여다본 것이다. “쇠가 쇠를 깎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어요. 그 길로 공장에 들어가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죠.”

점심 백반 한 끼가 25원 하던 시절, 일당 40원을 받고 소년은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우고, 배웠던 기술은 노트에 죄다 기록하는 성실함으로 결국 금형을 만드는 중소기업의 대표가 됐다. 중간에 부도를 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연매출 70억 원을 올리는 건실한 회사로 일궈냈다. 소년시절부터 현재까지 45년간 매일 공장으로 출근하고, 하루 일과를 꼼꼼히 기록하는 생활에는 변함이 없다.

○ 기술력으로 좌절 딛고 성공


박건필 덕흥엔지니어링 대표는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과 기술”이라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이 회사에서 직원들이 형틀 제작 작업을 하고 있다. 안산=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박건필 덕흥엔지니어링 대표는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과 기술”이라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이 회사에서 직원들이 형틀 제작 작업을 하고 있다. 안산=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1981년 기술을 충분히 익혔다고 생각한 박 대표는 창업을 결심하고 ‘신성금형’을 세웠다. 삼성전자로부터 우수 협력업체 표창까지 받을 정도로 잘나갔지만, 1986년 자금담당 직원의 배신으로 어음을 막지 못하고 부도가 났다. 좌절도 잠시, 그는 곧 다른 공장에 취직했다. 그는 “부도를 냈지만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며 “기술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1994년 5월 그는 ‘덕흥엔지니어링’의 간판을 걸었다. 분야는 당연히 금형.

금형(金型)은 말 그대로 쇠로 만든 틀이다. 동일 규격의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틀을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박 대표는 “쉽게 말해 붕어빵 기계의 틀을 만드는 것”이라며 “틀 바깥으로 밀가루가 새어나오지 않고, 붕어빵의 무늬가 선명하게 나올 수 있는 완벽한 틀을 만드는 것이 기술력”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전자기계용 작은 부품의 금형을 만들었던 이 회사는 기술 개발을 통해 자동차용 부품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는 1981년부터 매번 계약이 들어올 때마다 해당 부품의 모형, 형태, 수량, 치수를 직접 기록했다. 수십 년을 쌓아온 이 기록은 덕흥엔지니어링의 기술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또 2000년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인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그는 “최초 설계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제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형틀 제작뿐 아니라 마지막 연마 작업이 중요하다”며 “기계로 최대한 설계와 유사한 형틀을 만들고, 이 틀을 0.1mm 오차 범위 내에서 사람이 깎고 다듬는 작업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덕흥엔지니어링은 중소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자체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직원 36명의 25%인 9명이 연구실 소속이다. 기술력만 있다면 직원의 나이는 고려하지 않아 별도의 정년퇴직제도가 없다.

○ 샌드위치 한국, 해법은 ‘사람’


각종 상품이 슬림해지고, 디자인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금형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 LG전자도 자체 금형 공장 설립에 나섰다. 유려한 디자인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금형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 금형은 샌드위치 신세다. 금형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대를 이어 공장을 운영하는 일본은 기술 노하우가 풍부하고, 중국은 자금력을 무기로 대당 10억 원이 넘는 일본제 최첨단 금형기계를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한국이 믿을 것은 결국 사람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기업의 힘은 기술에서 나오고, 기술은 곧 사람이다”고 설명했다.

경기 안산시에 위치한 덕흥엔지니어링 건물 옥상에는 골프연습장이 있다. 박 대표는 “중소기업 다닌다고 골프 치면 안 되느냐”며 “직원 복지만큼은 대기업 못지않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정작 그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담배도 가장 구하기 쉬우면서도 가격이 싼 2000원짜리 ‘디스’를 피운다. 게다가 신입 사원에게 일반 중소기업보다 높은 2000만 원 중반대의 연봉을 주는 것도, 연봉과 별도로 직원 명의의 통장에 월 20만∼30만 원씩을 따로 저축해 직원이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조용히 건네는 것도 모두 사람과 기술을 중요시하는 그의 경영 철학 때문이다. 또 그는 금형조합에 매년 일정 규모의 장학금을 낸다. 금형조합은 금형 관련 중소기업이 갹출한 돈에 조합비를 더해 매년 1억 원의 장학금을 만들어 기술 관련 학과의 학생에게 전달하고 있다. 박 대표는 “업체나 조합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기술 인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며 “지금까지는 업체들의 노력으로 버텨 왔지만 한국 금형의 도약을 위해서 정부도 실효성 있는 기술 인력 양성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안산=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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