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준發 ‘연기금 주주권 행사론’에 정두언-나경원 등 잇단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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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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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대선 겨냥 ‘그랜드 플랜’?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국민연금을 통한 대기업 견제론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친(親)대기업 정책기조가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는 ‘규제가 가미된 대기업 정책(Disciplined market economy)’으로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곽 위원장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여당과 정부가 공감대를 갖고 내년 대선과 총선을 겨냥해 펼치는 그랜드 플랜(Grand Plan)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각종 친기업정책이 기업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분배구조 개선보다는 대기업의 몸집 불리기만 불러와 내년 선거에서 대다수 유권자의 표심(票心)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정치권과 정부의 이 같은 방향 선회는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질 것으로 보여 재계의 대응이 주목된다. ‘선거를 앞둔 수사(修辭)’ 정도로 받아들이면 재계가 정부에 발을 맞춰주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보수의 정체성 상실’로 받아들이면 양측의 충돌은 물론이고 여권 내부의 분열까지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다.

○ 여당, 곽승준에 잇달아 지지 표명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곽 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행사론’에 대해 한나라당 지도부와 소장파들이 잇따라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재벌’ ‘공룡’ ‘장애요인’ 등 강도 높은 표현을 사용하며 전날 곽 위원장의 발언을 지지했다. 정 최고위원은 “한국 재벌은 개발독재시대에는 경제 압축성장에 크게 기여했지만 군사정부 말기부터 너무 비대해지더니 외환위기 이후에는 옛날 이상의 공룡이 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나경원 최고위원도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연기금이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에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입법 활동이든 정치적 발언이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최고위원 외에도 당내 일부 소장파 초선의원이 곽 위원장의 대기업 견제론에 공감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곽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개인적 의견”(김희정 대변인)이라며 일단 거리를 둔 청와대와 달리 한나라당 내 일각에서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힌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이 대통령의 동반성장론에 동의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라는, 이미 선진국에서도 검증된 방법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균형과 상생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20, 30대 젊은 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해 파격적인 경제이슈로 관심을 끌고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연기금 주주권 행사론’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론은 곽 위원장의 돌출적 개인 의견이라기보다는 중립, 진보성향 유권자를 파고들지 않으면 내년 총선과 대선은 어렵다는 여권위기론이 모아진 데 따른 준비된 이벤트”라고 말했다. 곽 위원장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연기금을 통한 견제론에 동의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 정부 내에서도 높아진 대기업 견제론

대기업을 바라보는 눈이 여권만 강경해진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3년차에 접어들면서 정부의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시장자본주의의 접근법도 크게 달라졌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열린 세종포럼 조찬강연회에서 “애덤 스미스가 독과점과 경제력 집중이 시장기능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며 “국가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 시장다워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도 최근 한 조찬강연회에서 “납품단가를 후려쳐 단기성과를 높이고 성과금을 챙기려는 기업 관료는 해고해야 한다”며 ‘기업 관료’라는 표현을 써 재계의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각종 규제를 완화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던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것은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는 출범 이후 대기업의 숙원이었던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의 폐지를 비롯해 산업자본이 금융사를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산(金産)분리제도를 완화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고유 업종을 폐지했다. 이와 함께 법인세까지 인하하면서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노력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대기업의 독과점 구조가 심화되고 여전히 신규 투자를 꺼리는 한편 고용 창출에도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당과 정부의 이 같은 정책 변화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기업을 키우면 성장을 통한 분배가 가능할 것으로 본 정부의 초기 생각은 단기간에 되는 게 아니라 아주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문제”라며 “2, 3년 해봤는데 성과가 안 나타난다고 바꾸는 것은 정책 혼란만 일으킬 뿐”이라고 말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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