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공공관리제 “비리 차단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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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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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용산구청은 재개발지역인 한남 제5재정비촉진구역 추진위원장을 지난해 9월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한남5구역 추진위가 재개발 정비업체를 선정할 때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규정에 따라 주민총회에 2명의 후보를 올려 선정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추진위가 단수 후보로 독자 결정했다는 것. 서부지검은 지난달 한남5구역 추진위원장을 기소했다. 한남5구역 추진위는 결국 정비업체 재선정 작업에 다시 착수했지만 “정비업체를 고를 재량권마저 뺏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제1지구 추진위는 상근직원 3명 전원이 급여를 받지 않고 자원봉사 형식으로 일하고 있다. 추진위가 재개발사업 설계자를 선정하기 위해 5월 열리는 주민총회 결과를 낙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계자 후보가 기각될 수도 있는 판에 운영비를 조달하려고 연리 5.8%의 서울시 정비사업기금을 선뜻 빌릴 결심이 서지 않는 상황. 만약 설계자 후보가 퇴짜를 맞으면 3개월간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가지만 사업기금 이자 700만 원은 납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서울시가 관내 재개발·재건축사업이 더는 복마전의 오명을 쓰지 않도록 하겠다며 지난해 7월부터 법률에 따라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공공관리제가 시행되면서 사업장 곳곳이 과거와 다른 관행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 현재 서울시의 재개발·재건축사업을 포함한 총 461개 사업장에 공공관리제가 적용되고 있으며 이 중 추진위가 구성된 곳은 216개, 조합이 설립된 곳은 23개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공공관리제는 사업 진행의 모든 단계를 서울시가 마련한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조합을 지원하기 위해 해당 구청 등이 위탁관리자로 개입하는 방식이다. 또 정비업체나 시공업체 선정 같은 핵심 항목을 추진위나 조합 집행부가 아니라 총회에서 결정하도록 해 ‘밀실 담합’과 ‘금품 수수’를 차단하는 장치도 두었다.

○ 운영비 태부족에 재량권도 잃어

최근 본보가 서울시의 공공관리제 시범사업지역 18곳 중 추진위가 구성된 9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6곳이 비용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상당수의 추진위가 추진위원장의 개인 재산을 담보로 맡긴 뒤 운영비를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관리제 적용 이전에는 정비업체나 시공업체가 넉넉하게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올해는 대한주택보증이 발급하는 보증서를 제시하면 서울시 사업기금을 5억 원까지 빌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다수 추진위는 인건비와 사무실 유지비, 정비업체 비용 등 쓸 곳이 많아 액수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성수2지구 추진위 관계자는 “대출한도를 늘리고 대출조건을 완화해 적기에 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시범사업 추진위들은 위탁관리자인 해당 구청에 일일이 진행상황을 보고한 뒤 다음 업무를 해야 하는 점도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사업 현장은 서울시의 매뉴얼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현장 상황에 따라 사안별로 대처해야 하는데도 획일화된 기준을 요구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 투명성 강화에는 후한 점수

추진위 9곳은 예외 없이 공공관리제 적용으로 사업의 투명성이 확보됐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마련한 클린업시스템(cleanup.seoul.go.kr)에는 △월별 자금 입출 명세 △연간 자금 운영 계획 △월별 공사 진척도 △업체 계약 변경 내용을 비롯해 모두 13개 항목을 입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서울시나 해당 구청, 주민들은 추진위나 조합의 활동 내용을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볼 수 있다.

그러나 투명성 향상의 뒤편에는 뜻하지 않는 걸림돌도 돌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추진위 구성 다음 단계인 조합 설립 때 토지 소유주가 부담해야 할 추정 분담금을 통보하는 항목이 꼽힌다. 서울시가 토지 소유주들이 각자 본인의 대략적인 분담금을 파악한 뒤 조합 설립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규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수1지구 추진위 관계자는 “서울시가 제공하는 금액 추정 프로그램으로 산출하니 분담금 액수가 너무 많이 나와 지금 상태라면 적지 않은 소유주들이 조합 설립에 반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성수1∼4지구 추진위는 서울시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에 자료를 입력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공공관리과 관계자는 “종전에는 재개발·재건축사업 막바지 단계인 관리 처분 시점에 분담금을 공표해 조합원 간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며 “당장 반대 의견이 거세더라도 공개할 항목은 공개해 주민들의 판단으로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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