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비자금 입막음’ 박명석 대한화섬 대표, 의혹 핵심열쇠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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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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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서보급 인수때도 ‘탈법’ 막후역할

태광그룹의 불법 상속·증여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은 이호진 회장의 광화문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20일 참고인들을 잇달아 소환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 중구 장충동 태광산업 본사. 양회성 기자yohan@donga.com
태광그룹의 불법 상속·증여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은 이호진 회장의 광화문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20일 참고인들을 잇달아 소환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 중구 장충동 태광산업 본사. 양회성 기자yohan@donga.com
“박명석 대표의 입을 열어라.”

태광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은 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박명석 대표가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비자금의 전모와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인사로 지목하고 있다. 최종적인 수사 타깃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지만, 그에 앞서 박 대표의 입을 열게 하는 것이 사건을 풀 수 있는 핵심 열쇠로 보고 있다.

○ 오너 경영권 확립에도 핵심 역할

태광그룹 전직 직원 A 씨는 박 대표가 2007년 금융감독원 조사 때 차명계좌 명의자였던 직원들에게 ‘짜맞추기 진술’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박 대표가 비자금 관리의 총책임자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뿐만 아니라 박 대표는 태광그룹의 지배회사 중 하나로 급부상한 한국도서보급의 주식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막후 역할을 하는 등 그룹 자금을 좌지우지하며 이 회장의 경영권을 확립하는 데 총괄책임을 맡았다. 이는 2007년 12월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한국도서보급 전 대표 김모 씨의 1심 판결문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이 판결문에 따르면 2005년 10월경 박 대표가 한국도서보급의 주식 8%(1만2000주)를 소액주주(대한출판문화협회 등)들로부터 주당 1만6660원에 매수할 수 있도록 실무작업을 추진하라고 김 씨에게 지시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대부분의 소액주주는 이 회장의 아들 현준 군에게 주식을 매도했으나, 대형 서점인 Y문고만이 주식 매수 제안을 거절하자 김 씨는 Y문고 측에 협찬비 명목으로 3000여만 원의 금품을 건네고 매매를 성사시켰다. 결국 이 회장과 현준 군은 한국도서보급 주식을 100% 전량 인수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한국도서보급은 그룹 계열사인 피데스증권(현 흥국증권)과 대한화섬의 주식을 인수해 지배회사로 올라섰다.

○ ‘왕상무’ 이선애 씨 행방 묘연

박 대표는 이 회장뿐만 아니라 그룹 창업 때부터 자금 관리를 도맡아온 이 회장의 어머니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82)의 뜻을 받들어온 최측근으로 꼽힌다. 검찰은 박 대표뿐만 아니라 이 상무가 별도로 관리해온 자금도 추적하고 있다. 20일 오후 11시경 이 상무의 자택은 불이 다 꺼진 채 경비원들만 남아있었다. 이웃 주민들은 “15일 이후에는 이 상무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저녁에도 불이 켜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 상무가 압수수색에 대비해 미리 자취를 감춘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 차명 명의자 전원 소환키로

13일 태광산업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해 속전속결로 수사를 진행해온 검찰은 19일부터 태광그룹의 차명주식과 차명계좌 명의자들을 줄줄이 소환조사하는 등 비자금의 조성 과정과 출구를 정밀하게 추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가 20일 “방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자금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당분간 상당한 시간과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가 공개한 태광산업 주주명단에 따르면 차명으로 의심되는 주주만 60여 명이다. 박 대표는 이들이 태광산업 주식 전체 지분의 1.12%를 158주 또는 262주씩 동일하게 갖고 있어 차명주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명단에 나온 이들의 주소가 대부분 서울 중구 장충동 태광산업 본사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 차명계좌 명의자 역시 수십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100여 개에 이르는 차명계좌에 대한 자금 추적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앞으로의 수사가 첩첩산중이지만, 검찰은 태광그룹 전·현직 직원과 업계 관계자 등에게서 쏟아지고 있는 제보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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