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개입 日, 국제 비판 거세자 ‘물귀신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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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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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 개입 해놓고 韓-中때리기 ‘적반하장’

최근 엔화 가치가 역사적 최고점(1995년 4월 19일 기록한 달러당 79.75엔)에 바짝 다가서자 공개적으로 외환시장 개입을 발표한 일본이 갑자기 한국을 물고 늘어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의 책임까지 운운하며 한국을 공격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을 공개적으로 지목해 외환시장 개입 자제를 요청한 것.

외환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일본 재무성에 강력하게 항의하면서도 확전에 나서진 않고 다음 달 11일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발표할 환율 중재안을 만드는 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 일본의 물귀신(?) 작전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상은 1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국과 중국을 외환시장 개입국으로 지목했다. 간 총리는 “특정국이 자기 나라 통화가치만 인위적으로 낮게 유도하는 것은 G20 합의에서 벗어난다. 한국과 중국이 공통의 룰 속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다 재무상은 22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한국에 의장국으로서 책임을 추궁하겠다고까지 말했다.

일본 정부가 중국은 물론 한국의 외환시장까지 비판한 것은 수세에 몰린 자국 상황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달 초 공개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자 한국을 같은 범주로 끌어들인 것이다. 또 엔화 강세로 수출시장에서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일본 기업들의 목소리를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경제부처 관계자는 “어느 국가든 환율이 급등락할 때는 미세조정을 하기 마련”이라며 “한국 정부의 미세조정을 외환시장 개입이라고 비난한다면 다른 어느 국가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는 이날 일본 재무성에 “다른 나라 환율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큰 결례”라고 항의했다. 일본 재무성 측은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각국의 통화가치 절하 움직임에 대한 질문이 나와 일어난 실수였다.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 균형성장 틀 안에서 환율 중재안 마련

정부는 환율을 놓고 일본과 갈등을 벌이기보다 중재안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G20 정상회의에서 환율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한 것이다. 서울 G20 정상회의가 갑자기 떠오른 환율 변수 때문에 싸움터로 변질되는 것을 지켜보지 않고 적극적인 중재를 통해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이끌어 내는 게 낫다는 계산이다.

우선 정부는 20개국이 사전 보고한 거시경제정책에서 환율과 관련된 공통분모를 최대한 뽑아내고 있다. 또 공통분모와 상이한 주장을 하는 국가와는 개별 접촉을 하고 있다.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결론을 내릴 의제 중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각국의 정책대안 △국제통화기금(IMF) 쿼터 개혁 △개발 이슈에 대해선 이미 워킹그룹이 각각 만들어져 있다. 각국 실무자급이 워킹그룹에 속해 이슈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 정부 관계자는 “1년간 서울 정상회의를 준비해 왔는데 지금 갑자기 환율 이슈에 대해 19개국의 의견을 새로 물을 순 없다”며 “기존 정상회의 절차를 활용해 환율에 대한 공통분모를 뽑고 견해차가 큰 국가와는 별도로 조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G20 정상회의는 20개국의 정상이 모두 합의해야 그 내용이 성명서에 반영돼 실효성을 지닌다. 따라서 준비위는 환율에 대해 극단적으로 견해차를 보이는 국가와는 사전에 접촉해 의견을 조율해야만 한다. 이 같은 작업의 첫 성과는 23일 경주에서 발표할 예정인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의 성명서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신(新)플라자합의’ 나올까

미국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나올 환율 중재안이 플라자합의에 필적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정상회의에서 신플라자합의를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시 엔화와 마르크화는 국제적으로 통용됐지만 현재 중국 위안화는 사용처가 주로 중국에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이외의 국가가 위안화를 사들여 강제적으로 위안화를 절상시킬 방법이 없다. 게다가 1985년 당시는 일본과 독일이 미국의 위세에 눌려 미국의 달러화 약세를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중국이 위안화 절상에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대규모 시장개입을 통한 환율조정(플라자합의)보다는 좀 더 유연한 수준의 국제공조가 이뤄질 것”이라며 “2003년 두바이에서 선진 7개국(G7)이 합의한 환율 합의 정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바이 G7 합의는 “환율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문구상으로 합의한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환율에 대한 국제공조 효과가 나타나 합의 후 2년 만에 엔화는 3.5%, 유로화는 9.2% 절상됐다.

다자간 국제협상 경험이 많은 정부 관계자는 “내년 G20 정상회의 의장국은 프랑스인데 미국으로선 IMF 쿼터 개혁 등으로 관계가 껄끄러운 유럽 국가보다 한국에서 정상회의가 열릴 때 환율 문제를 매듭짓고자 할 것”이라며 국제 분위기를 전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 플라자합의 ::

1985년 9월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5개국의 재무장관이 모여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평가절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실제 2년 후 달러화에 대해 엔화는 65.7%, 마르크화는 57.0% 절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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