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사업 총체적 위기]시행사는 빚더미 원주민은 막막 경쟁력은 뒷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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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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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苦’ 보금자리

경기 시흥시 계수동 은계지구.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개발되지 않은 은계지구와 바로 옆 고층 아파트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작년 12월 2차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지만 토지보상과 관련해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주민들 간에 마찰을 빚고 있다. 시흥=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경기 시흥시 계수동 은계지구.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개발되지 않은 은계지구와 바로 옆 고층 아파트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작년 12월 2차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지만 토지보상과 관련해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주민들 간에 마찰을 빚고 있다. 시흥=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1일 오전 2차 보금자리주택지구 중 한 곳인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편의 모습은 천양지차다. 한쪽은 대형건설사의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지만 반대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속한 은계지구는 논밭과 비닐하우스만 황량하게 펼쳐져 있었다. 바로 이곳에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서 말끔히 새 단장될 계획이지만 마을 분위기는 흉흉하기만 하다. 마을 입구에는 ‘보금자리 지구 당장 철회하라’, ‘양도소득세 전면 폐지’ 등 주민대책위원회의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보상을 위한 감정평가를 앞두고 마을 곳곳에 ‘토지주와 주민의 허락 없이 어떠한 출입이나 조사도 허락하지 않는다’ 등 빨간색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주민들은 외부인의 접근조차 경계하는 긴장된 분위기였다. 올해 11월 3차 보금자리주택지구의 사전예약이 예정된 가운데 정부의 역점사업인 보금자리주택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서민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존에 살고 있는 원주민의 ‘보금자리’를 빼앗는다는 비판이 아주 거세고 그린벨트에서 수십 년간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아온 세월이 너무 야속하다는 박탈감도 심하다.》

○ ‘보금자리’ 빼앗아 ‘보금자리’ 만드나

은계지구 주민들은 보금자리주택 얘기가 나오자 누구랄 것도 없이 불만을 터뜨렸다. 사업이 아예 취소되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40년 넘게 이곳에 살며 축산업을 하는 안효찬 씨는 “보금자리 한다고 가축 다 팔고 땅도 팔아버리면 어디 가서 뭐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이주비를 준다고 하지만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는 판에 그 돈 받아서 뭘 할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보상금을 받더라도 이미 인근 땅값이 많이 올라 고향 근처에 자리를 잡기 어려운 형편이다. 조상 대대로 9대째 살고 있는 한 70대 주민은 “보금자리 1만3000여 채를 만들어 서민들을 웃게 해준다고 하는데 이곳 1100명이 넘는 토지소유주와 실제 거주자들로부터는 보금자리를 뺏어 울리고 있다”며 “주민들이 원해서 한 사업도 아닌데 힘이 없어 찍소리도 못하고 쫓겨나야 할 형편”이라고 울분을 삼켰다. 특히 1970년대 그린벨트로 지정된 이후 40년간 제대로 재산권 행사를 못한 채 살아온 원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한 원주민은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겠다고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다”며 “그린벨트가 풀리기만 고대하던 우리한테 이제 헐값을 주고 떠나라니 속 터진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2차지구인 경기 구리시 갈매지구의 한 전원주택에서 사는 김모 씨는 자연 속에서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2년 전 이사 왔다. 이제 보금자리주택에 밀려 다시 집을 구해야 하지만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질지 걱정이 많다. 김 씨는 “주변 시세는 3.3m²당 800만 원인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500만 원 선에서 보상해 준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주민들의 반대와 보상협의로 보상 일정이 미뤄지는 데다 앞으로 제대로 보상이 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118조 원의 막대한 부채로 신음하는 LH가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상당 부분을 맡은 점도 원주민을 불안하게 한다. 이들은 부채 때문에 최근 전면적 구조조정을 하는 LH의 형편 때문에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무기한 연기되면 재산권 행사를 계속 못하게 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보상비 산정의 기준이 처음 지구 지정 시점이기 때문에 피해가 커진다고 주장한다. 이종학 은계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인근 땅값이 올라 갈 곳이 없다”며 “강제로 쫓겨나면서 실거래가보다 낮은 보상금을 받으면서 양도세까지 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3월 이후 세 차례나 연기되다 10일에야 보상계획공고가 난 경기 하남시 미사지구 주민들도 불만이 많다. 김학민 하남 미사지구 주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현금 보상이 원칙인데도 언제부터인가 채권 보상이 거론되더니 최근에는 최고 5년 만기 채권까지 등장했다”며 “당장 다른 곳에 집을 사려면 채권을 할인해 써야 하는데 왜 우리가 할인액만큼 비용을 부담해야 하냐”며 억울해했다. 단서 조항에 있는 LH의 월별 자금 한도제에도 의구심이 많다. 김 부위원장은 “LH 사정상 현금이 없다면 보상이 계속 지연될 수 있다는 얘긴데 그럼 5년, 10년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있다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 무늬만 반값 아파트, 정체성 흔들

‘반값 아파트’로 기대를 모았지만 인근 아파트 시세보다 오히려 비싸 서민주택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보금자리지구 인근 아파트 시세가 꾸준히 떨어지면서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도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범지구와 2차 지구 사전예약을 받으면서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50∼80% 선에 맞춰왔다. 하지만 2차 지구인 경기 시흥시 은행동의 최근 평균 시세는 3.3m²당 821만 원으로 보금자리주택 최고가인 890만 원보다 낮아졌다. 경기 부천시 옥길지구 역시 3.3m²당 평균 시세가 900만 원으로 보금자리주택과 큰 차이가 없어졌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주변 시세가 낮아졌다면 오히려 보금자리주택의 효과가 벌써 나타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에 다걸기(올인)하면서 민간 건설사의 주택공급을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많다. 올해 3월과 5월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이 있을 때마다 민간 분양시장은 맥을 추지 못했다. 보금자리 인기지구에 들어가기 위해 아파트 매입 계획을 미루는 수요자들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보금자리주택이 단기간에 대량 공급돼 향후 아파트 공급시장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자체장들이 잇따라 업무협조를 거부하고 나서는 것도 변수로 꼽힌다. 경기 성남시는 3차 고등지구의 자체 개발을 주장하면서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 광명시도 홍수대책과 민자고속도로로 인한 도시 양분(兩分) 문제를 보완하지 않으면 보금자리 사업에 협조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따라 3차 지구 사전예약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사전예약은 정해진 시점이 없는 만큼 지구계획 수립과 관계없이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6·2지방선거 이후 지자체들의 태도가 바뀌었지만 계속 협의해서 지구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시흥·하남=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갈 곳 잃은 ‘보금자리 주택’
▲2010년 8월17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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