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시장 좁아… 일본 앱 시장부터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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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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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페이스북 꿈꾸는 04학번 대학생 김기호씨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창업자는 이런 거 다 안 배웠는데 어떻게 성공했나요?” 2008년 연세대 마케팅 원론 수업. 기계공학과 04학번 김기호 씨(25) 눈에는 경영학이 새로운 세계로 보였다. 틈만 나면 교수님과 조교를 쫓아다니며 궁금한 걸 물었다. “뭔가 영감을 줬어요. 경영에서 기술이 다가 아니라 소비자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5일 서울 마포구 강북청년창업센터. 기자는 옛 마포구청 건물의 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은 저기 계세요.” 컴퓨터 5대가 놓인 사무실 가장 안쪽 자리에서 티셔츠에 안경을 쓴 사람이 명함을 내밀었다. ‘이매진앤쇼(ImagineNShow) 김기호 대표’라고 쓰여 있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회사다. 대학 도서관 좌석 확인 등 학교 정보를 담은 연세대, 고려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선거 공약을 담은 매니페스토 앱도 있다. “창업을 꿈꿔 본 적은 없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학교는 3학년까지만 마치고 휴학 중이다. 기술보증기금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생 벤처는 0.68%에 불과하다. 김 대표는 왜 남들이 한창 취업준비를 할 때 창업에 뛰어들었을까?》

페이스북은 하버드대 학생들이 교내용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작지만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인 회사를 꿈꾸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창업에 나선 ‘이매진앤쇼’의 김기호 대표(가운데)와 개발자 김재하 씨(21·왼쪽), 디자인팀장 노금희 씨(22).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페이스북은 하버드대 학생들이 교내용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작지만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인 회사를 꿈꾸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창업에 나선 ‘이매진앤쇼’의 김기호 대표(가운데)와 개발자 김재하 씨(21·왼쪽), 디자인팀장 노금희 씨(22).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모바일에 눈뜨다

취직이냐 유학이냐. 어느 길도 확신할 수 없었던 2009년 6월. 김 씨는 여느 대학생처럼 기업 공모전에 도전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영플러스멤버십(YPM) 아이디어 공모전’. 주제는 ‘미래 모바일 혁신기기’였다.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지 않고, 흔들기만 해도 기능을 선택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결과는 3등. 1년 동안 삼성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하지만 김 씨의 머릿속에는 ‘스마트폰’ 네 글자가 느낌표(!)로 떠올랐다.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이라 스마트폰을 잘 몰랐어요. 공모전을 준비하다 ‘아, 이거다’ 싶었죠.” 마침 여름방학 때 열흘 일정으로 놀러간 일본 여행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외국인들에게 관광 정보를 주는 애플리케이션은 어떨까?”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앱 개발 회사의 문도 두드려 봤다. 하지만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프로’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 마침 학교에서 ‘벤처세미나’라는 수업을 들은 친구가 말했다. “그냥 네가 회사를 만들어봐. 연세대창업센터에서 사무실도 지원해 준대.”

사업계획서를 쓰고,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도 했다. 교내 창업센터에서 지원이 결정되자 기기도 빌려주고, 사업자 등록과 같은 복잡한 절차도 알려줬다. 드디어 2009년 10월, 회사가 생겼다. “대학생이라 힘들까 했는데, 오히려 대학생이라서 지원 받는 게 많았어요.”

○돈, 세금, 특허, 사람관리…첩첩산중

일단 돈이 필요했다. 일할 사람도 필요했다. 그리고 ‘웬 사업이냐’며 펄펄뛰는 부모님도 설득해야 했다. 부모님이 납득할 만한 진로 시나리오를 짰다. 첫째, 2년 후 매출액 5억 원을 벌지 못하면 그만두겠다. 둘째, 2년 후 취직해도 늦은 나이가 아니다. 셋째, 석·박사에 지원해도 창업 경험은 도움이 될 거다. 결국 부모님이 1500만 원을 대출해 줬다. 아들은 상환계획서를 제출했다. 중소기업청에도 지원을 요청해 5000만 원을 따냈다.

“사실 저는 기계공학과라 앱 개발은 잘 몰라요. 훌륭한 개발자를 뽑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개발자 3명을 구했다. 모두 같은 학교 친구들이다. 마케팅 팀장은 06학번 연세대 경영학과 권계은 씨, 디자인 팀장은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07학번 노금희 씨가 맡았다. 6명은 사이좋은 친구이지만 인사관리가 가장 어려웠다. 다들 아르바이트이다 보니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평생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법률문제에 맞닥뜨린 적도 있다. 올 초 그의 회사는 여성들을 위해 재치 있는 ‘욕’을 대신 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이때 ‘보이스웨어’사가 만든 글을 목소리로 바꿔주는 프로그램 일부를 무단 도용했다가 문제가 불거진 것.

“지금 생각해도 그 회사에 정말 죄송하고, 또 감사해요. 처음 항의를 받았을 때는 정말 깜깜했어요. 특허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사업은 꼼꼼한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죠.” 결국 교내방송국 아나운서들에게 목소리 녹음을 부탁해 문제를 해결했다.

○구글 같은 기업 운영이 꿈

“한국 정보기술(IT)시장은 너무 작아요. 네이버와 구글은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지만 지금 규모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초창기 사업 아이디어였던 관광안내 앱은 일본시장을 공략하려고 합니다.”

요즘 김 대표와 직원들은 한국 관광안내 앱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주력 언어는 일본어. 김 대표가 운영하는 ‘이매진앤쇼’는 개발한 4개 앱이 모두 무료라 매출이 월 600만 원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회사지만 김 대표는 세계시장 진출을 꿈꿀 정도로 야무지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 만든 페이스북으로 세계를 휩쓸고 있는 마크 주커버그가 그의 롤모델이다.

“큰 부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시작한 거니까요. 2년 후 매출 5억 목표를 이루고 사업을 키워 나가고 싶어요. 그땐 한국이 아닌 실리콘밸리에서 회사를 차리고 싶고…. 부끄럽지만 제2의 구글을 꿈꿔 봅니다.”

김 대표는 창업할 때 복잡한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배운 게 하나 있다고 한다. “종교는 믿지 않지만 ‘두드리면 열린다’는 성경 구절은 진짜예요. 자꾸 물어보고, 찾아다니면 정말 문이 열리고, 누군가 도와주더라고요.”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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