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어 짐 검사 당했다? 이미 ‘노란딱지’ 붙어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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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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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객 급증… 인천국제공항 세관 입국검사 현장 가보니

X선 검색실에서 한 여성 판독관이 승객들의 화물을 살피고 있다. 판독관들은 X선 상에서 물건의 밀도와 모양으로 의심스러운 화물을 찾아내 여기에 노란색 전자 실을 부착한다. 사진 제공 인천공항세관
X선 검색실에서 한 여성 판독관이 승객들의 화물을 살피고 있다. 판독관들은 X선 상에서 물건의 밀도와 모양으로 의심스러운 화물을 찾아내 여기에 노란색 전자 실을 부착한다. 사진 제공 인천공항세관
12일 오후 5시 반. 인천국제공항 3층 도착 층에는 해외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들과 이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유리문 안쪽의 세관 직원들의 손길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세관 직원들이 승객의 가방을 직접 열어 내용물을 일일이 살펴보는 비율은 보통 100명 중 2명꼴이지만 이달 말까지 여름휴가철 특별단속기간을 맞아 검사율은 3%대로 높아졌다. 한 세관 직원은 “오늘 이 시간까지 루이뷔통 가방, 카르티에 시계 등 30건을 적발했는데 옆의 직원은 70건을 적발했다”며 “오전 9시부터 지금까지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셜’(검사지정관)이 지정을 해서 검색대로 나온 20대 남녀 3명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카타르 도하에서 막 도착한 일행이었다. 가방을 열자 큼지막한 루이뷔통 가방 1개와 프라다 가방 1개가 나왔다. 또 두 개의 가방을 열어젖히자 안에는 이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루이뷔통 가방 2개가 또 들어있었다. 당초 400달러(약 47만6000원)짜리 구찌 가방 1개만 샀다고 신고한 이들의 실제 구입액은 면세 범위(400달러)의 10배가 넘었다.

47일간 스페인, 독일 등 유럽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처음에는 ‘쓰던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세관 직원의 매서운 추궁이 시작되자 5분도 안 돼 “친구들의 부탁으로 산 것”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총 구매금액에서 면세범위 400달러를 제한 금액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찾아갈 수 있다’는 세관 직원의 설명과 함께 명품 가방들이 박스째 유치 창고로 옮겨지자 가운데 서 있던 여성은 어지러운 듯 휘청거렸다. 옆에 있던 남자는 “재수가 없으려니까”라고 중얼거렸다.

세관 직원이 노란색 실이 부착된 화물을 가지고 나온 승객의 가방을 열어 검사하고 있다. 사전에 의심 승객으로 분류됐거나 잠복 요원이 검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도 검색 대에서 검사를 받게 된다. 사진 제공 인천공항세관
세관 직원이 노란색 실이 부착된 화물을 가지고 나온 승객의 가방을 열어 검사하고 있다. 사전에 의심 승객으로 분류됐거나 잠복 요원이 검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도 검색 대에서 검사를 받게 된다. 사진 제공 인천공항세관
하지만 이들이 검사 대상으로 선택된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은 세관직원이 무작위로 자신을 선택한 걸로 알지만 세관은 세 가지 시스템에 의해 수백 명의 승객 가운데 문제가 될 만한 검사 대상을 찾아낸다. 3가지 비밀병기를 가진 세관직원은 이미 검색할 대상을 선택해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도착전 미리 승객성향 분석
X선으로 샅샅이 화물 검색
사복 감시요원도 곳곳 배치


첫 번째 비밀병기는 손바닥만 한 ‘노란 스티커’에 숨겨져 있다. ‘옐로 실’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자 실(seal)은 이미 승객들이 컨베이어벨트에서 짐을 찾기 전 붙는다. 이 작업이 이뤄지는 곳은 ‘엑스선 검사실’. 모든 승객의 화물을 대상으로 안에 들어있는 물건의 형태와 밀도를 면밀히 관찰하는 이곳에서 한 여성 판독관은 기자의 눈에는 그저 ‘동그라미’로 보이는 것을 가리키며 “1캐럿 정도의 다이아몬드 반지로 의심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자 실이 부착된 짐이 검색대 근처로 오면 세관 직원들은 경보음으로 검색 대상이 다가왔음을 알게 된다.

두 번째는 사전승객분석시스템(Advance Passenger Information System·아피스)이다. 세관직원들이 검사 대상을 미리 선택하는 데 가장 긴요한 무기다.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올 승객이 외국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면 적어도 인천공항 도착 2시간 전 승객의 모든 정보가 컴퓨터로 현장 세관 직원 40여 명에게 전송된다.

여기에는 1년간 해당 승객의 출입국 횟수와 대상 국가, 국내 면세점 구입 금액 등이 모두 들어있다. 홍콩 명품 특별 세일 기간, 특정 지역에서 열린 보석 전시회 같은 정보도 공유된다. 실제로 한 세관 직원이 명품을 숨겨왔을 것으로 의심되는 승객의 여권을 ‘자동 여권 판독기’에 갖다 대자 해당 승객이 국내 면세점에서 구입한 총 금액부터 최근 1년간의 출입국 현황까지 10여 가지의 핵심 정보가 모니터에 바로 떴다.

‘보이지 않는 감시’ 시스템
문제 승객만 콕 집어내 조사
입국절차 14분만에 완료


세 번째는 사복을 입고 여행객들 사이에 잠복해 있는 ‘로버(rover)’라 불리는 요원들이다. 이들은 사전에 아피스로 지정된 승객들의 뒤를 은밀히 쫓으며 동선을 검색대 인근 직원들에게 알린다. 짐을 찾을 때 승객들의 대화를 엿듣거나 동태를 살피는 것도 이들의 일이다. 신혼부부가 물건을 나눠 운반하거나 박스나 포장을 제거해 가방에 넣는 행동도 이들의 눈을 피할 순 없다.

인천국제공항은 입국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14분으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권고하는 45분보다 훨씬 빠르다. 이는 문제가 있는 승객만 정확하게 집어내 검사하고 나머지 ‘선량한’ 승객들은 감시를 받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계된 ‘보이지 않는 감시’ 시스템 덕분이다. 20년 경력의 민경걸 인천공항세관 관세행정전문관은 “이런 시스템을 모르는 승객들이 검사 대상이 됐을 때 ‘왜 내 짐만 검사하느냐’고 거세게 항의할 때가 가장 난감하다”고 말했다.

면세한도가 1996년부터 400달러로 유지되는 것과 관련해선 면세점 직원들조차 편법을 은근히 권할 정도로 실효성 논란이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인천공항세관 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소득수준별 면세기준을 보면 우리나라의 면세한도는 낮지 않다”며 “규정의 상징적 효과를 감안해서라도 지금으로선 한도를 올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인천=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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