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변한 건설현장, 화이트칼라 안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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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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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요가 → 수박화채 새참 → 전문업체 점심 → 휴게실 낮잠 → 샤워후 퇴근
■ 대형건설사 근무환경 개선 붐

20일 인천 서구 청라지구 SK건설 현장식당(일명 함바집). 제육볶음에 유기농야채를 곁들인 메뉴가 본사 구내식당 못지않다. 사진 제공 SK건설
20일 인천 서구 청라지구 SK건설 현장식당(일명 함바집). 제육볶음에 유기농야채를 곁들인 메뉴가 본사 구내식당 못지않다. 사진 제공 SK건설
서울 마포구 서교동 GS건설 서교자이 공사현장. 20년째 목수로 일하는 장모 씨(54)는 자가용을 타고 현장에 도착한다. 출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자태그(RFID) 카드를 꺼내 출근 신고를 마친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전문 요가강사의 안내에 맞춰 몸을 푼다. 새참 시간에는 막걸리가 아닌 시원한 수박화채로 갈증을 달랜다. 점심식사 후에는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한 휴게실에서 낮잠을 청하고 일을 마친 후 전용 샤워장에서 목욕을 한 뒤 퇴근길에는 자가용에 오른다. 이곳에서 일한 지 1년 반이 넘은 장 씨는 “업무시간이나 복지 수준을 다 따져 봐도 이곳은 화이트칼라 사무실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장 씨 혼자만의 하루 일과가 아니다.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근무 여건 개선 바람이 불면서 사무직 근로자 뺨치는 작업환경을 갖춘 공사현장이 확산되고 있다. 건설사들의 현장 근로자 우대 방침과 ‘우리도 대우받을 만큼 받아야겠다’는 근로자들의 의식수준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GS건설 서교자이 공사현장에서는 아침 조회 때 국민체조 대신 요가를 한다. 무용원 출신의 젊은 여성 강사가 매일 아침 근로자들과 함께 요가로 몸을 푼다. 요즘 찜통더위가 계속되자 곳곳에 제빙기를 설치했고 얼음조끼도 지급하고 있다. 근로자들만을 위한 회의실과 휴게실도 갖췄다. 허명수 GS건설 사장은 “근로자들을 위해 아침마다 음주측정과 건강검진을 한다”며 “현장에서는 GS건설 직원과 일용직 근로자가 모두 똑같이 대우 받는다”고 말했다.

요즘은 공사현장에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건설사들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GS건설 서교자이 현장만 해도 근로자 600명 중 절반이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 이귀재 현장소장은 “주차공간이 부족해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일부 현장에서는 인근 주차장을 빌려 근로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마포구 GS건설 공사현장 근로자들이 전문 요가강사의 동작을 따라하며 몸을 풀고 있다. 이종승 기자
23일 서울 마포구 GS건설 공사현장 근로자들이 전문 요가강사의 동작을 따라하며 몸을 풀고 있다. 이종승 기자
공사장 하면 떠오르는 ‘함바집’(공사현장의 식당)도 탈바꿈했다. 억센 사투리의 아줌마가 밥을 퍼주는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가 아니라 영양사가 근무하는 전문 급식업체가 식당을 운영한다. 인천 서구 청라지구 SK건설 함바집은 SK건설 본사 구내식당을 담당하는 업체가 관리한다. 200석 규모의 식당은 에어컨 4대를 설치해 무더운 여름에도 쾌적한 온도를 보장한다. 메뉴도 본사 구내식당보다 낫다. 복날에는 황기 삼계탕이 나오고 수박화채나 얼린 황도 같은 후식도 매일 빠지지 않는다. 식당 관계자는 “힘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곳인 만큼 육류 위주의 식단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라지구 SK건설 식당은 한번에 200명이 식사할 수 있으며 에어컨 4대가 시원한 바람을 내뿜는다. 사진 제공 SK건설
청라지구 SK건설 식당은 한번에 200명이 식사할 수 있으며 에어컨 4대가 시원한 바람을 내뿜는다. 사진 제공 SK건설
건설현장에 복지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당시에는 건설경기 호황으로 공사장이 이곳저곳에 많이 생기면서 근로자가 부족했다. 고참 기능공들이 대우가 좋지 않으면 수하 근로자들을 데리고 다른 현장으로 가버리는 일이 예사였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한국인 숙련공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GS건설 관계자는 “가뜩이나 한국인 근로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터 환경이 생활수준보다 나쁘면 이들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원가절감을 우선해 인건비 줄이기에 바빴다. 하지만 곧 ‘품질’ 관리를 위해서는 공사현장의 ‘복지’를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장윤 SK건설 청라지구 관리부장은 “근로자를 잘 챙겨주는 게 결국 아파트 품질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돈이 들어도 안전사고가 줄어들고 품질도 유지되는 점을 고려하면 손해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수준급 공사현장은 아직 대형 건설사에 한정돼 있다. 중소건설사가 운영하는 공사장은 아직도 사정이 열악하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건설사들이 일용직 근로자들을 위해 하루 4000원가량의 퇴직공제금을 내주는 공사장은 전체의 57% 수준에 그치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관계자는 “10월부터는 전체 공사장의 75%가 퇴직공제금 지원 혜택을 받게 된다”며 “일용직 근로자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퇴직금과 출산·결혼수당을 제공하는 등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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