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채권단 재무약정 싸움 점입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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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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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주채권은행 바꿔 재평가 받겠다” 고수
채권단 “약정체결 거부 땐 신규대출 중단” 압박

현대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 여부를 놓고 채권단과 현대 측의 대결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은 약정 체결을 거부할 경우 신규대출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 중이지만 현대그룹은 ‘주채권은행을 교체해 다시 평가를 받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11일 “현대그룹이 15일까지 재무개선약정을 거부하면 만기가 돌아온 대출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 대출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이 은행권에서 빌린 돈은 1조6000억 원이며 이 중 연내에 약 5000억 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농협과 외환 산업 신한은행 등 채권금융회사들은 7일 현대그룹에 공문을 보내 ‘약정 체결을 미루면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현대그룹은 4월 말까지 실시한 재무구조 평가에서 불합격해 재무개선약정 체결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룹 총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상선이 지난해 해운경기 악화로 5654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낸 영향이 컸다. 약정 대상으로 선정되면 5월 말까지 주채권은행과 약정을 체결해야 하지만 현대는 평가 결과에 불복하며 채권단과 대립하고 있다.

현대 측은 “외환은행이 배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해운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약정 체결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주장한다. 1분기 116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해운업 경기가 회복되고 있고 1조5000억 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유동성도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권단은 금융비용을 포함하면 현대상선이 1분기에 당기순손실을 냈다고 맞서고 있다. 해운업 경기 회복 움직임을 감안해도 구조조정 없이는 정상화가 힘들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현대그룹이 재무개선약정의 체결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를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기 위한 의도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약정을 체결하면 현대 측은 계열사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기가 어려워진다.

현대그룹은 외환은행에 ‘빌린 돈 1600억 원을 금명간 갚을 테니 주채권은행을 변경하게 해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주채권은행이 제대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다른 은행에서 재무구조 평가를 다시 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환은행과 다른 채권은행들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금융 당국도 여신 거래가 없을 경우 기업의 요청에 따라 주채권은행 변경을 검토할 수는 있지만 그에 앞서 일단 재무개선약정은 체결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어 현대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채권단은 15일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신규 여신 중단 등 초강경 조치를 들먹이며 현대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한국도 이제 선진국인데 여신 중단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으로 보지 않으며 채권단과 계속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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