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협력사 비애’ 뼈저리게 느끼는 한국 대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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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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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상 ‘기밀유지협약’ 엄존
애플에 부품 대는 삼성-LG
“고객 심기 거스를라” 부심

기업들의 세계에서는 ‘기밀유지협약’이라는 것이 빈번하게 이뤄집니다. 영어 약자로 NDA(Non-disclosure Agreement)라 불리는 기밀유지협약은 쉽게 말해 ‘사업상 우리만 알고 외부에는 알리지 말자’는 약속입니다. 사실상 ‘갑’과 ‘을’의 관계가 겹쳐 있죠. 협력업체가 NDA를 깨면 납품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대장 노릇을 하는 대기업들이 이 때문에 글로벌 무대에서는 ‘을’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슈퍼 ‘갑’은 현재 미국의 애플입니다. 자사 제품 안에 어느 회사 부품이 들어가는지에 대해 협력업체들이 한마디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애플 임원이 어느 나라 어느 기업을 방문하는지 알려지는 것도 꺼려합니다.

애플 아이패드나 아이폰4에 들어가는 ‘IPS’라는 디스플레이 기술은 LG디스플레이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최근 팀 쿡 애플 최고운영책임자가 LG디스플레이의 경기 파주공장을 방문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을 때 애플 측은 거세게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이미 몇몇 업체들이 아이패드 등을 분해해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부품이 사용됐음을 밝혔음에도 애플은 비밀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시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애플과 소니에 부품을 납품하기도 하는 삼성전자는 다른 종류의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NDA를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 애플이나 소니와의 경쟁 상황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에선 완제품을 만드는 부서에서 경쟁사인 애플이나 소니의 제품에 대해 언급을 하면 애플이나 소니에 공급해야 하는 반도체나 액정표시장치(LCD) 부서에서 곧장 항의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이는 삼성전자가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모두 생산하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TV 완제품으로는 소니와 경쟁을 하면서도 소니에 LCD를 공급합니다. 스마트폰 부문에서는 애플과 경쟁하면서 애플 아이폰에 들어갈 반도체도 팔고 있죠.

하워드 스트링어 소니 회장이 지난달 방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만찬을 함께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삼성은 매우 난감해했습니다. 불필요하게 고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이 이런 속앓이를 하는 것이 사실은 한국의 산업 전체에는 반가운 일입니다. 외국에서 소재와 부품을 사다가 완제품만 만들어 팔던 한국이 세계 최고의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 정도로 산업이 고도화됐다는 증거니까요.

김선우 산업부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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