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분양’ 약효 없자 전세-체험분양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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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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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들의 무덤’ 대구 부동산시장 가보니

수요 예측 못하고 중대형 공급
‘미분양 해소책’ 효과 적을듯
보금자리 들어오면 더 막막

“전세분양 잡으세요”
완공 전부터 전세분양에 나선 대구지역의 한 아파트. 대구 건설업계는 2008년 말부터 본격화한 전세분양의 계약 만료일이 올해 말부터 돌아오기 시작하면 건설사들이 또 한 차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전세분양 잡으세요” 완공 전부터 전세분양에 나선 대구지역의 한 아파트. 대구 건설업계는 2008년 말부터 본격화한 전세분양의 계약 만료일이 올해 말부터 돌아오기 시작하면 건설사들이 또 한 차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오후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의 한 아파트 단지. 지난해 입주가 시작된 이 아파트 울타리 곳곳에는 ‘할인분양 계약세대 입주 절대 불가’, ‘할인분양 하려거든 입주세대 보상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건설사가 미분양 아파트를 팔기 위해 최근 15∼20% 할인된 값에 아파트를 분양하자 제값 내고 입주한 주민들이 할인금액만큼 환불을 요구하며 플래카드를 건 것이다.

오후 9시 반, 한 주상복합 아파트. ‘대구의 타워팰리스’로 불리는 이 아파트는 1400여 채, 50층 규모로 대구 중심에 들어서 옥상 네온사인과 함께 대구의 밤을 화려하게 밝혀줄 스카이라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대부분 가구의 불이 꺼져 있었고 드나드는 승용차도 보기 힘들었다. 대구시가 밝힌 이 아파트의 입주율은 30% 수준. 현지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요즘 대구에서는 빈집에 불 켜기 운동까지 벌여야 할 정도”라며 “대구지역 신규 분양 아파트의 실제 입주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전했다.

○ 인구 줄어드는데 중대형만 쏟아져

정부의 잇단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주택시장이 갈수록 침체되고 있다. 미분양 주택을 팔기 위해 건설사들은 입주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할인분양을 강행하고 있다. 그래도 집이 팔리지 않자 새로 지은 아파트를 주변 시세의 50% 수준에 임대하고 있으며 분양가의 일부만 내고 입주한 뒤 2∼5년간 살아 보고 마음에 들면 중도금을 내고, 아니면 분양가를 환불해 주는 ‘체험 분양’도 등장했다.

대구지역 분양 대행사인 장백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대구에서 분양 중인 단지 중 33%가 할인분양, 32%는 전세분양이며 기존 분양가대로 분양 중인 주택은 35%에 지나지 않는다.

대구시가 자체 집계한 3월 말 대구 미분양 주택 수는 1만6594채. 2008년 말부터 본격화한 할인분양 등에 힘입어 미분양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1월 말(2만2161채)에 비해 5567채 감소했으나 지난해 11월(1만6843채) 이후 5개월째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이처럼 대구가 ‘건설사들의 무덤’이 된 이유는 건설사들이 수요를 예측하지 않고 마진이 높은 중대형 아파트 건설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현지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경기가 좋았던 2005∼2006년에는 지어 놓기만 하면 100% 분양되는 분위기였다”며 “이때 시행사들이 앞 다퉈 중대형 아파트를 쏟아낸 게 지금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대구시 김종도 건축주택과장도 “현재 안 팔리고 있는 주택은 대부분 85m² 초과 중대형이고 85m² 이하 중소형은 잔여물량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시 집계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60m² 이하 미분양 주택은 96채, 60m² 초과 85m² 이하는 5153채인 데 비해 85m² 이상은 1만753채였다.

B시행사 관계자는 “만약 대구 사람들의 지갑이 두둑했더라면 이 정도로 주택 경기가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청구, 우성과 같은 대구지역 대기업이 도산한 뒤 이렇다 할 산업단지가 조성되지 않아 일자리가 줄어들고, 젊은 사람들은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 인구가 줄어든 게 주택경기 불황의 직격탄이 됐다”는 것이다.

○ 미분양에 물린 건설사 자금 3조 원

“할인분양 중단하라”
‘할인분양에 반대한다’는 내용으로 대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걸린 플래카드. 최근 대구지역은 제값 내고 아파트를 분양 받은 주민과 분양가를 15∼20% 할인받아 입주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대구=나성엽 기자
“할인분양 중단하라” ‘할인분양에 반대한다’는 내용으로 대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걸린 플래카드. 최근 대구지역은 제값 내고 아파트를 분양 받은 주민과 분양가를 15∼20% 할인받아 입주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대구=나성엽 기자
문제는 대구의 경기침체와 미분양 사태의 해결 조짐이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 정부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주택 미분양 해소 및 거래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대구시와 현지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김 과장은 “현재 대구의 미분양은 중대형이 대부분이어서 실수요자를 위한 중소형 중심의 정부 대책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대구지역 건설사들이 2008년 말 앞 다퉈 도입한 전세분양의 계약만료 기간이 올해 말 도래해 입주자들이 전세금 환급을 요구할 경우 또 한 차례 분양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르면 2012년경부터 대구 지역에도 보금자리 주택 건설이 본격화된다. 정부는 대구 도남, 대곡, 옥포, 연경 지구에 2012∼2015년 보금자리 주택을 짓기로 했다고 최근 지정고시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이례적으로 관(官)이 나서서 민간 건설사들을 대변해 “보금자리 주택 건설을 유보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현재 최소 3조 원 이상의 돈이 미분양에 물려 있어 대구 경제는 돈줄이 말랐지만 미분양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사실상 없다”며 “‘투기 조장’에 가까운 정책을 펼쳐 달라고 정부에 읍소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구=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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