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기흥공장 작업환경 재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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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발병 논란’ 반도체 생산라인 공개… “연구-학술단체와 함께 실태파악”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삼성전자가 경기 용인시 기흥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공개하기로 한 15일 오전 9시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을 출발하려던 세 대의 버스 중 한 대에 정모 씨가 자신도 함께 가야 한다며 올라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 근무자였던 정 씨는 남편이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유가족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측은 이날 생산라인 공개는 언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내려달라고 했지만 정 씨는 내리지 않았다. 30여 분의 실랑이 끝에 버스에 탔던 20여 명의 기자와 삼성전자 임직원만 각자 택시를 타고 기흥으로 이동했다.

직원들의 백혈병 발병 원인이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 때문이라는 논란에 휩싸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공정 설명회를 갖는다고 발표하자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외신 11개 매체를 포함해 국내외 85개 매체가 이날 설명회에 참석했다. 지난 13년 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 근무했던 직원들 가운데 22명에게서 백혈병 및 림프종이 발병하고 이 중 10명이(삼성전자 집계) 숨지자 노동계 등에서는 반도체 생산 공정이나 공정에 사용되는 물질에 발암성이 있는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날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담당 조수인 사장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불의의 질병으로 운명한 것에 삼가 조의를 표하는 것으로 설명회를 시작했다. 하지만 조 사장은 “반도체 라인 근무자가 작업환경 때문에 암에 걸릴 위험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해물질은 법적 기준의 10% 이하로 관리되며 라인에는 1000개의 센서가 있어 가스나 화학물질이 새면 즉시 감지가 된다. 방사선설비는 문을 열면 전원이 끊어져 누출이 차단된다는 것이다. 각 라인에는 환경안전담당자가 있어 생산성보다 안전을 더 중요시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왜 백혈병 논란이 불거진 지 3년이 지나서야 언론에 라인을 공개하는지, 근로자가 산업재해 판정을 받지 못했더라도 삼성전자 측에서 보상을 할 수는 없는지 등을 비롯해 기술적인 질문도 많았다. 이에 대해 조 사장은 “그동안 한국산업안전공단 등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걸로 모자란다는 걸 깨달았다. 방치하면 안 될 것 같아 지금이라도 나선다”고 말했다.

이날의 라인 공개는 ‘쇼’라는 비판도 나왔다. 문제가 됐던 3개의 생산라인 중 2개 라인은 이미 반도체 마무리 공정을 하는 라인으로 바뀌었고 다른 한 라인은 발광다이오드(LED) 생산라인이 됐다. 이제는 공정도 대부분 자동화돼서 근로자들이 위험에 노출될 여지는 더욱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라인 공개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행보라는 지적도 있다. 반도체 공정 자체가 기술 보안 사항이어서 삼성전자로서는 기술 유출 위험성을 무릅쓰고 공개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백혈병 논란과 관련해 국내외의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 및 학술단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작업환경에 대한 재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또 직원들의 보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 ‘삼성전자 건강연구소’를 만들었다. 조 사장은 설명회 말미에 “이걸로 모든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오늘이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로 삼성전자와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 간의 ‘정서적 거리감’이 얼마나 줄어들지 주목된다.

기흥=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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