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산업 호황 호주 “일감 넘쳐 고민, 일손 달려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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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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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전략 선두주자 호주 가보니

각국 대규모 부양책 영향
석탄-철광석 수출 2배로
일자리 늘며 소비지출 급증
신용카드 매출 사상최대 증가
수차례 금리 올렸지만
경기 재침체 징후 안보여



지난달 19일 호주 시드니에서 서북쪽으로 160km 떨어진 스프링베일 광산. 새벽 이른 시간이지만 광산 입구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에선 유연탄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하루 24시간 쉴 틈 없이 석탄을 캐는 스프링베일 광산의 지난해 생산량은 약 350만 t. 2년 전보다 100만 t가량 늘었다. 80만 t에 불과했던 수출이 150만 t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덕분이다. 근무체제를 연중무휴로 바꿨지만 늘어난 석탄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스프링베일 광산의 그레그 베닝 부매니저는 “호주를 보면 언제 경제위기를 겪었냐고 할 만큼 거의 정상으로 회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가 서서히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Exit Strategy)’ 실행 시기가 각국 정부의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긴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어렵게 살려놓은 경제회복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호주는 지난해 10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출구전략을 단행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조기 출구전략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지만 반년이 흐른 지금 호주에선 경기 재침체의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가계부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금리가 올라가 가계 부담이 커진 점과 다른 교역국들이 출구전략을 실행하면 수출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는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호주 시드니 시내에 위치한 취업지원센터 ‘센터링크(Centrelink)’ 지점. 한창 바쁠 오전 11시이지만 구직자 대출을 담당하는 사이먼 퍼거슨 씨는 책을 뒤적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 오전 내내 그가 상담한 구직자는 단 3명. 몰려드는 구직 신청자로 점심마저 걸렀던 지난해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퍼거슨 씨는 “지난해부터 구직 관련 상담자가 꾸준히 줄어 몇몇 분야는 채용을 하고 싶어도 직원을 구하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호주가 가장 빨리 출구전략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석탄과 철광석 매장량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이룬 탄탄한 성장세 덕분. 세계 각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국제 원자재 가격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호주의 자원 산업이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호주는 구인난을 걱정할 만큼 빠른 경제성장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실제 2월 말 현재 호주 정부가 운영하는 316개 센터링크 지점을 통해 취업지원을 신청한 구직자는 모두 38만 명으로 7개월 새 4만 명 이상 줄었다. 실업률 역시 첫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지난해 10월 5.8%에서 3월 말 5.3%로 0.5%포인트 낮아졌다. 이 기간에 늘어난 일자리만 17만 개에 이른다.

늘어난 일자리는 고스란히 소비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신용카드 이용실적은 전월보다 10% 이상 늘어 사상 최고의 증가 폭을 기록했다. 시드니 최대 백화점 체인인 마이어의 조앤 크로퍼드 매니저는 “올해 열릴 월드컵 특수를 누리고 있는 TV 등 가전제품은 지난해보다 매출이 2배 가까이 늘었다”며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 호주, 가계부채 비율은 英보다 높아 ▼

시드니 종합시장 오전부터 북적
지난달 20일 호주 시드니의 대표적인 종합시장인 플레밍턴 마켓. 오전부터 모여든 쇼핑객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시드니=문병기 기자
시드니 종합시장 오전부터 북적
지난달 20일 호주 시드니의 대표적인 종합시장인 플레밍턴 마켓. 오전부터 모여든 쇼핑객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시드니=문병기 기자
조기 출구전략의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크게 늘어난 가계부채가 출구전략 후폭풍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2008년 호주 정부가 기준금리를 49년 만에 최저 수준인 3.0%로 낮추고 경기부양을 위해 신규주택 구매자에 대한 무상 지원을 확대하면서 부동산 과열 현상이 일어났다. 지난해에만 부동산 가격이 10% 이상 오르면서 빚을 얻어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이 크게 늘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8년 123%에서 지난해 161%로 급등했다.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편으로 꼽히는 영국(139%) 미국(101%)보다도 높다. 이 때문에 현재 4.25%인 호주의 기준금리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6∼7%로 복귀하면 높은 가계부채 비율이 가계부실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시드니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만난 제니스 칼슨 씨는 지난해 10월 20만 호주달러(약 2억 원)의 빚을 얻어 아파트를 구입했다. 칼슨 씨는 “눈독을 들이던 아파트가 6개월 새 10만 호주달러나 올라 대출규모가 예상보다 커졌다”며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면 이자부담이 커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시드니=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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