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기자의 쫄깃한 IT]‘기록’에 서툰 디지털 문화 ‘추억’이란 콘텐츠 어떨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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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다음 중 아는 그룹을 있는 대로 고르시오.

①듀스 ②노이즈 ③잼 ④R.ef ⑤투투

다 알면 구세대 소리 듣는다고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이들은 1990년대 초 가요계를 뜨겁게 달군 댄스그룹입니다. 그 유명한 ‘가요 톱10’에서 한 번쯤 1위도 해봤고 지금의 빅뱅이나 2PM 못지않게 팬도 많았던 그룹들입니다. 그럼에도 요즘 10, 20대들 중에는 이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심지어 2000년 데뷔한 보아도 인터넷에선 ‘옛날 가수’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만 이런 걸까요? 세계 음반시장 2위인 일본에는 1980년대 여성 아이돌 가수의 대표로 꼽히는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란 가수가 있습니다. 올해로 데뷔 30년을 맞은 이 여가수는 분명 ‘옛날 가수’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콘서트장에는 30, 40대 기성세대 못지않게 10, 20대 젊은층도 나타납니다. 마쓰다 세이코의 전성기 모습에 대한 추억이 없는데도 젊은층이 팬을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기록에 대한 위엄이 숨어 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공신력 있는 차트인 ‘오리콘’은 2006년부터 옛날 차트를 복원해 온라인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마쓰다 세이코는 일본 역대 여성 아이돌 가수 중 ‘싱글 24장 연속 1위’ 기록을 가진 가수로 남아 있습니다.

미국 음반 시장을 대표하는 ‘빌보드차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보드차트는 ‘빌보드지(誌)’에서 매주 발표하는 차트입니다. 2007년 빌보드지는 ‘빌보드닷컴’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1946년부터의 옛 기록을 모두 공개했습니다. 최근에는 기록만 공개하면 재미없을까 봐 ‘역대 가장 섹시한 음악’, ‘가장 오랫동안 빌보드 싱글차트에 올랐던 곡’ 등 주제를 잡아 옛 기록을 들추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면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산업이 ‘음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산업이 축소됐다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없어진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기록은 새로운 뉴스만큼이나 흥미로운 콘텐츠가 될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의 디지털 문화는 소비하는 데만 급급할 뿐 기록하는 데 있어선 아직 서툰 부분이 많습니다. 역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대중음악만 하더라도 1980년대 음반점에서 한 장씩 나눠 준 ‘뮤직박스’ 차트가 있었고 TV에선 ‘가요 톱10’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온라인 시대 빠른 유행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나머지 과거를 소홀히 했다는 겁니다. 평가할 기록이 없으니 아냐, 모르냐의 잣대가 전부일 수밖에 없죠.

‘싸이월드’ 배경음악 차트에는 소녀시대의 ‘런 데블 런’ 못지않게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같은 노래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네이버뮤직이나 벅스뮤직 같은 사이트에서는 ‘추억의 음악’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오늘의 기억들은 내일의 추억이니까요.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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