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천하’ 은행권 ‘女파워’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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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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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함 무기로 PB영업-옴부즈만 등서 두각
첫 이사회의장-CEO 배출… 임원급도 상당수


외환은행은 최근 부유층 고객 대상의 프라이빗뱅킹(PB)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40대 여성 지점장을 PB영업본부장에 임명했다. 2002년 당시 서울 강남구 포이동을 시작으로 도곡역, 종로 등 은행 내부에서도 요지로 꼽히는 점포에서 지점장만 잇달아 3번을 지낸 김남아 본부장(49)이 주인공. 그는 지점장 시절 5회 연속 성과평가 1위를 달성해 동료 남성 지점장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본부장들의 평균 연령이 50대인 것을 감안하면 40대 여성 본부장 임명은 ‘파격 인사’여서 은행 안에서도 화제가 됐다”고 전했다.

은행권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지점장 이상 간부로 올라갈수록 여성 인재들에게 인색했던 은행권에서 김 본부장처럼 ‘유리천장(보이지 않는 차별)’을 뚫고 고위직으로 도약하는 ‘알파 우먼’들이 늘고 있는 것. 최근에는 여성들이 금융지주회사의 이사회 의장,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 등 그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요직까지 점령하고 있다.

○ 유리천장을 뚫고 올라온 여성 뱅커

여풍은 지난주 열린 은행권의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도 확인됐다. 신한금융지주에선 전성빈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가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은행권에서 여성이 이사회 의장에 오른 것은 전 교수가 처음이다. 우리금융그룹도 자회사인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의 대표이사에 권숙교 우리금융 정보기술(IT)담당 상무를 선임했다. 권 대표이사는 우리금융그룹 최초의 여성 CEO다. 26일에는 신한은행이 유희숙 PB고객부장을 승진시켜 영업추진그룹의 영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이들 외에도 은행권 곳곳에 여성 간부들이 포진해 있다. 기업은행은 올해 1월 권선주 외환사업부장을 은행 내 최초로 중부지역본부장에 선임했다. 권 본부장은 이 은행의 ‘최초 본점 부장’이라는 이력도 있다. 지난해까지 여성 본부장이 2명이었던 국민은행에서도 올해 초 박해순 씨가 영등포영업지원본부장으로 승진하면서 3명으로 늘었다. 이에 앞서 지난해 3월에는 외환은행의 최명희 감사가 임직원의 불만이나 고충을 해결해주고 차별 등을 시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글로벌옴부즈만(부행장)으로 승진했다. 하나금융지주에서는 준법감시인인 유니스 김 부사장이 대표적인 여성 고위직으로 꼽힌다.

○ 씨티은행, 여성 사관학교

여풍은 외국계 은행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SC제일은행에는 16명의 부행장 중 제니스 리(최고재무책임자·CFO), 루스 나드러(홍보본부), 김미화(글로벌기업부), 김선주 씨(소매영업운영본부) 등 4명이 여성이다. 지난해 5월에는 SC제일은행과 함께 SC금융지주의 자회사인 SC스탠다드저축은행에 강명주 사장이 취임했다. 한국씨티은행에도 김명옥(업무지원본부), 유명순 씨(기업금융상품본부) 등 2명의 여성 부행장이 활약하고 있다.

특히 씨티은행은 국내 은행권에서 여성 인재들의 ‘산실’로 평가받는다. 현재 부행장 2명 외에도 최명희 외환은행 글로벌옴부즈만, 유니스 김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강명주 SC스탠다드저축은행 사장이 모두 씨티은행 출신이다.

하영구 씨티은행장은 “여성들도 남성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은 승진 기회를 제공한다”며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조직의 다양성은 씨티은행의 문화이자 강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은행권 우먼파워 더 거세질 것”

은행 관계자들은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신입행원 중 여성 비율이 점차 늘고 있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은행별, 연도별로 차이는 있지만 여성 정규직 신입행원 비율은 40∼60%로 남성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많을 때도 있다. 한 시중은행의 인사부장은 “예전 같으면 육아나 가사 등을 이유로 중도에 회사를 나가는 여성 은행원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이런 퇴직 사유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며 “PB영업 등 섬세한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가 늘면서 여성들의 승진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은행 내 700여 명의 점포장 가운데 여성이 꾸준히 늘어 지금은 55명에 이른다”며 “매년 명예퇴직 인원이 발생하는 과정에서도 여성 점포장 비중이 커지는 것은 그만큼 영업능력을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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