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창의적 생각은 고양이 낮잠처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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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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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샘솟는 공간은 엉뚱한 곳이었네

지지부진하던 소아마비 백신 개발
성당 천장 바라보다 불현듯 떠올라
구글-MS 회사내 ‘빈둥대는 곳’ 마련
직원들 상상력 자극… 생산성 높여

건축물의 구조와 인간의 창의성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에 착안한 구글은 벌집이나 곤돌라 모양의 독특한 회의실을 만들어 직원들의 창의성과 혁신 아이디어를 배양하고 있다. DBR 자료 사진
건축물의 구조와 인간의 창의성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에 착안한 구글은 벌집이나 곤돌라 모양의 독특한 회의실을 만들어 직원들의 창의성과 혁신 아이디어를 배양하고 있다. DBR 자료 사진
1950년대 미국의 면역학자 조너스 솔크 박사는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인생을 걸었다. 몇 년간 연구에 매달렸지만 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그는 이탈리아에 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는 어느 날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을 방문했다. 성당의 높은 천장을 바라보다 불현듯 포르말린을 통해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즉시 귀국한 그는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솔크 박사는 연구실에서 풀지 못한 문제를 성당에서 해결한 이유가 성당의 천장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과연 그의 생각대로 천장의 높이와 창의성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까.

놀랍게도 수십 년 후 그의 믿음은 사실로 밝혀졌다. 건축물의 구조가 인간의 창의성, 집중력, 인지능력 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실증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구글 내에는 마사지 룸과 비슷한 휴게실도 있다. 직원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도록 유도하기 위한 공간이다. DBR 자료 사진
구글 내에는 마사지 룸과 비슷한 휴게실도 있다. 직원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도록 유도하기 위한 공간이다. DBR 자료 사진
○ 높은 천장을 지닌 솔크연구소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덕에 솔크 박사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예일대 건축학과의 루이스 칸 교수에게 건물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때 솔크 박사는 칸 교수에게 모든 연구실의 천장 높이를 3m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수년간 씨름하던 백신 아이디어가 연구실이 아닌 13세기 고성당에서 나온 건 높은 천장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세계 각국 실내 공간의 천장 높이는 대부분 2m40 정도다. 좀 높더라도 2m70에 불과하다. 솔크 박사의 부탁은 당시 건축계의 관행으로 보면 매우 이례적이었지만 칸 교수는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1965년 설립된 솔크연구소는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다. 현재 700여 명의 연구원과 300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규모가 그리 큰 연구소는 아니지만 솔크연구소가 이뤄낸 성과는 놀랍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만 5명을 배출했고, 이곳을 거쳐 간 노벨상 수상자도 수십 명이다.

솔크 박사뿐 아니라 이 연구소의 다른 과학자들도 높은 천장이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버드대나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있을 때보다 이 연구소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온다고 말하는 연구자가 많았다. 하지만 과학적 실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많은 사람은 솔크연구소 사람들의 이런 생각을 ‘그들만의 미신(urban myth)’이라 불렀다.

○ 천장이 높을수록 창의력 향상

2008년 솔크연구소 사람들의 생각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미국 미네소타대의 조앤 마이어스-레비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2008년 8월 ‘소비자 행동 저널(Journal of Consumer Behavior)’에 천장의 높이와 인간의 창의성이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을 천장이 각각 2m40, 2m70, 3m인 방 안에 넣고 똑같은 문제를 풀게 했다. 그 결과 3m 천장의 방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개념을 연결하는 문제를 푼 참가자들은 다른 피험자보다 2배 이상 더 잘 풀었다. 특히 천장이 가장 낮은 2m40의 방에서는 참가자들이 이 문제를 거의 풀지 못했다.

영국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도 그의 저서 ‘59초’에서 ‘점화(ignition)’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극하려면 불을 점화하듯 창조성을 자극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

와이즈먼 교수는 고민거리가 있다면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오히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때가 많다고 주장했다. 즉 미술관에서 현대 미술품을 보거나, 잡지나 신문을 뒤적이거나, 무심히 인터넷 검색을 시도하는 등의 행동이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회사 내에 직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에 편히 기댈 수 있는 의자, 아무 생각 없이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잡지와 책, 넓은 유리창, 뇌를 각성시키는 커피나 홍차도 둔다.

창의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처럼 직원들이 빈둥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생산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창의적 아이디어란 고양이의 낮잠처럼 무심히 찾아오기 때문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jsjeong@kaist.ac.kr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이 기사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 54호(4월 1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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