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펀드매니저에 경영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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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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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현장의 소리 듣자”
모임 열거나 설명회 참석
업계동향-사업전략 조언구해

“꼭 그 시장에 진출해야 합니까. 새로운 유통망을 구축하려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 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고요.”

“한국에서는 처음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노하우를 쌓았어요.”

“글쎄요, 새로운 시장이라고 진출했던 다른 사업은 이미 실패한 것 아닙니까.”

“실패라뇨. 아직도 진행 중인데요.”

얼마 전 화장품시장 진출을 선언한 한 생활가전업체 사장과 유명 펀드매니저의 대화다.

최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신규 사업 진출이나 전략을 구상하면서 컨설턴트나 경영학 교수가 아닌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를 찾아 ‘길’을 묻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 내부에도 경영을 감시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기능으로 교수나 전문가로 구성된 사외이사 체제가 갖춰져 있지만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가 제공하는 정보나 지식은 ‘살아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는 것이 CEO들의 설명이다.

○ 시장 파악해 경영에 반영

바쁜 CEO들이 자투리 시간이라도 쪼개서 펀드매니저들과 자주 대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KT 이석채 회장은 “시장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장이 원하는 기업이 되는 게 중요하다”며 “인터넷TV(IPTV) 발표회, 신년 기자간담회 등 KT의 중요 사업전략을 밝히는 자리에 애널리스트들을 함께 초청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보험담당 애널리스트들과 자주 만났던 이철영 전 현대해상 사장은 저축성 상품보다 보장성 상품의 비중을 높이라는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기도 했다. 현대해상 측은 “기업 탐방, 해외 펀드매니저들과의 교류가 잦은 애널리스트 등을 통해 살아 있는 정보를 얻는다”며 “2월에 물러난 이 전 사장의 전통을 서태창 현 사장도 살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CEO들은 기업이 속한 사업군의 세계적인 동향과 나아갈 방향 등에 관한 팁을 얻기도 한다.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은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도 탐방해 현장을 보고 들을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본부장은 “경쟁 기업에서 발표한 내용 말고 혹시 다른 변화가 감지되는 게 있느냐는 식으로 넌지시 타사의 동향을 묻기도 한다”고 전했다.

사외이사진을 갖추고 연구소 등을 통해 경영조언을 얻는 CEO들이 따로 증권가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는 또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1000여 개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매니저들은 업종과 경제 전반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경우가 많다. 패션기업이 화학기업으로 변신하는 등 업종 간 변신을 모색하는 기업이 많기 때문에 ‘전방위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이런 지식은 펀드매니저들이 많이 갖고 있다.

브레인투자자문 박건영 사장은 “신규 사업 추진을 위해 유상증자냐 은행 빚을 내느냐를 놓고 고민하는 CEO에게 ‘기업이 적절한 부채를 갖는 것도 전략의 하나’라고 조언하거나 다른 CEO에게 ‘원-달러 환율이 오를 것 같다’라며 달러를 보유하라고 권한 적이 있다”며 “시장의 조언을 잘 받아들여 새 사업을 개척하는 CEO들은 주가에서도 ‘CEO 프리미엄’을 받는 등 서로 윈윈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줘

증권업계에서 ‘열린 CEO’로 소문이 난 사람들은 KT 이 회장을 비롯해 LG화학 김반석 부회장, 웅진코웨이 홍준기 사장, 현대해상 이철영 전 사장, 하나금융지주 김종열 사장 등이다. 이들은 국내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설명회(IR) 자리에도 자주 참석할 뿐 아니라 1년에 2∼4차례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를 사석에서 만나 경영 전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로 찾아오는 펀드매니저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자리는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IR 활동에 보탬이 된다. CEO 시각에서는 회사가 IR를 통해 밝힌 경영비전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이들을 통해 회사에 대한 좋은 소문이 퍼지기도 한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본부장은 “기업을 경영하는 CEO가 증권가의 분위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고 이 경우 시장에서 그 기업의 주가는 그만큼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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