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1년… 금융서비스 혁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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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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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보호-펀드 슈퍼마켓 도입 등 기대 못미쳐
금융사 업무영역 확대 성과… “규제 완화 더 필요”

“일반 법인도 펀드를 모아서 팔 수 있도록 ‘펀드 슈퍼마켓’을 도입하겠다고 해서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준비를 했다. 그런데 금융감독원 실무진을 만나보니 ‘제도적으로 준비가 안 됐으니 기다려 달라’고 말해 중단했다.”(한 보험대리점 업체 임원)

“펀드에 가입하려고 점심시간에 은행에 갔는데 1시간 내내 서류를 읽어주기만 했다. 설명은 장황한데 무슨 말인지 도통 몰라 가입을 포기했다.”(한 직장인)

4일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됐다. 이 법이 시행되면 금융회사의 업무 영역이 한층 넓어져 ‘한국의 골드만삭스’가 등장하고 투자자들은 싼 가격에 질 높은 금융서비스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성적은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게 투자자들의 평가다.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에 치중한 나머지 실제 서비스의 품질은 낮고 펀드 슈퍼마켓은 아예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일부 성과도 있지만 규제를 완화해 제도 정착을 더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 겉으론 투자자 보호, 내용은 글쎄…

금감원은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투자자 보호에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다르다. 금융회사들은 형식적 판매요건에 맞추려고 수십 분간 투자설명서를 출력하고 책상에 붙여 놓은 펀드판매 매뉴얼과 일일이 대조하며 상담하고 있다. 정작 투자자들은 “증시 전망이나 경제 상황을 토대로 개별 고객의 투자 성향을 고려한 펀드 가입 권유는 없다”고 말한다. 한 증권사 임원은 “모든 금융회사가 한 가지 펀드판매 매뉴얼을 따른다는 것은 투자 선진국에서는 비웃음을 살 만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펀드 투자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겠다던 펀드 슈퍼마켓 제도는 아예 찾을 수 없다. 이 제도는 금융회사뿐 아니라 일반 법인들도 자산운용사와 계약해서 마치 슈퍼마켓처럼 여러 펀드를 팔겠다는 것이었다. 당초 금감원은 이 제도가 도입되면 판매망이 넓어져 평균 1.237%인 주식형 펀드 판매보수가 0.5%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난해 펀드 슈퍼마켓을 차리려고 매매중개업 인가를 받은 일반 법인은 한 곳도 없었다. 금감원은 “신청자가 아예 없었다”고 말했지만 보험설계사 출신의 투자권유 대행인들이 모여 세운 보험대리점 업체들은 “신청하려고 준비했지만 금감원 실무진이 기다리라고 했다”고 전했다.

○ 2년차, 이제부터 시작

증권사가 지급결제 기능을 갖고 증권·선물 등 금융회사의 업무영역이 확대됐다는 점은 성과로 꼽힌다. 증권사들은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지로수납 급여이체 인터넷쇼핑 등 은행 계좌로 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 은행과 주거래은행 경쟁을 벌이고 있다. 증권사들이 위탁매매(브로커리지)가 아닌 자산관리 위주로 영업을 바꾸는 계기도 됐다.

금융회사의 대형화를 통해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만들어내겠다는 목표는 아직 포부에 불과하다.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장악했던 국내 IB시장에서 국내 증권사들이 입지를 넓히고 있는 게 그나마 성과. 블룸버그가 지난달 발표한 ‘2009년 한국 자본시장 증권사별 실적 순위’ 국내 인수합병(M&A) 부문에서 우리투자증권이 7위, 삼성증권이 8위에 처음 올랐다.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은 이날 열린 ‘금융회사 발전전략 세미나’에서 “금융업계에 삼성전자 같은 대형사가 좀처럼 탄생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규제”라며 자본시장법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한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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