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샐러드 먹을까? 햄버거 먹을까? 선택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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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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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튼스쿨 경영저널 보고서
메뉴판에 음식 종류 많을수록
소비자의 선택 부담 커지지만
건강식으로 고를 확률 높아져

고를 수 있는 제품의 종류와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들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제품을 택한다. 넛지의 개념과도 연관이 깊은 이 현상을 잘 이용하면 건강 관련 제품이나 식품의 판매를 늘릴 수 있다.  DBR 사진
고를 수 있는 제품의 종류와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들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제품을 택한다. 넛지의 개념과도 연관이 깊은 이 현상을 잘 이용하면 건강 관련 제품이나 식품의 판매를 늘릴 수 있다. DBR 사진
당신은 현재 식당에서 두 가지 음식 중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고 있다. 첫 번째 음식은 맛이 별로 없지만 몸에 좋은 샐러드다. 두 번째 음식은 온갖 토핑이 듬뿍 들어가 매우 맛있지만 혈관 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햄버거다. 이때 당신이 몸에 좋은 샐러드를 고르도록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와튼스쿨 교수진의 연구에 따르면 주치의나 배우자의 잔소리, 보편적인 건강에 관한 상식들은 당신의 음식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당신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메뉴판의 길이였다. 소비자들이 몸에 좋은 건강식을 택하는 비율을 높이려면 식당의 메뉴판에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을 적어놓고, 메뉴판 길이도 더 길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건강식을 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온라인 경영저널 놀리지앳와튼(Knowledge@Wharton)은 ‘선택의 폭이 건전한 소비자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Too Much of a Good Thing? How Assortment Size Influence Healthy Consumer Choices)’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최근 소개했다. 보고서의 자세한 내용은 동아비즈니스리뷰 49호에서 볼 수 있다.

와튼스쿨의 요나 버거 마케팅 교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웬디 리우 마케팅 교수,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아네르 셀라 씨는 자신들의 논문 ‘다양성의 해악과 미덕: 선택의 폭이 선택에 미치는 영향’에서 아이스크림, 과일, 전자제품을 이용한 5가지 실험을 통해 선택의 행동 양식을 묘사했다. 연구 결과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의 수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는 오락성 위주나 당장의 만족이 아닌 현명하고 실용적인 선택을 했다.

소비자의 선택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은 ‘선택할 수 있는 재화의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소비자는 더욱 쉽게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구매율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버거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은 소비자의 선택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 참가자들에게 쿠폰과 상품권 등을 제공하고 재화의 수나 다양성이 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를 수 있는 재화가 다양하고 많을 때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구입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워했다. 선택의 폭이 커질수록 소비자는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느끼고 구매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쉬운 쪽을 택했다. 버거 교수는 이 현상을 ‘선택의 패러독스’라고 정의했다.

이는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느냐, 필요한 물건을 사느냐’는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버거 교수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초콜릿 케이크를 사는 일보다 건강한 과일을 섭취하는 일이, MP3플레이어보다는 업무에 도움을 주는 프린터를 사는 일이 훨씬 정당화하기 쉬운 선택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상품보다 실용적인 상품을 살 가능성이 높다. 실용적인 상품을 사는 일이 구매 행위를 쉽게 정당화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주는 구매 선택을 했을 때와 소위 바람직한 구매 선택을 했을 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만족스러웠는지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덜 바람직한 선택을 한 사람들은 나중에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는 소위 ‘죄의식 요소’를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게 느꼈다.

버거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마케팅과 영업 분야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스낵을 만드는 기업들은 다양한 브랜드의 스낵이 많은 상점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할 경우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이때 경쟁하는 다양한 브랜드의 스낵이 고열량 고칼로리 제품이라면 건강한 스낵이라는 자사 제품의 차별적 특징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성이 뛰어나고, 영화제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영화는 예술 영화 전문관보다 멀티플렉스관에서 상영해야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 대여점에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가 있다면 손님들은 화려한 스포츠카보다 소박한 세단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구진은 수많은 원서를 검토해야 하는 신입사원 모집 담당자에게도 이번 결과가 유용하다고 평가했다. 신입사원 모집 담당자가 접수된 원서 개수, 개별 원서의 양, 원서 제출자의 인적사항 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원서 개수가 많고, 개별 원서의 길이가 길어 모집 담당자가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한다면 정당화하기 쉬운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때 이 담당자는 특정 인종, 성별, 배경에 근거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버거 교수는 선택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사회적으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베스트셀러인 ‘넛지-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을 언급했다.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는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과거 공공 정책 수립, 정부가 국민 스스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결정을 하도록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와 깊은 관련을 지녔다. ‘넛지…’에서는 기업들이 어떻게 환경 요인을 조정해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9호(2010년 1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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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재형 교수의 의사결정 미학(美學)/직관+이성, ‘판단의 정석’을 갖춰라
엘리베이터의 수가 적어 불편한 빌딩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집중한다. 운행 방법을 바꾸거나 속도를 올리는 해법을 낸다. 대안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적인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해법을 생각해낸다. 대안에 매몰되지 않고, 가치 중심의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오류를 초래하는 인간 정보처리시스템의 한계와 원인을 소개한다.

▼ Competitive strategy in Practice/기업, 때론 소비자 가르쳐야
21세기 소비자는 기업이 물건을 판매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주체이자 새로운 원천이다. 애플처럼 소비자와 함께하는 경영전략으로 성공하는 기업이 되려면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소비자 커뮤니티를 움직인 후, 소비자의 개인적 경험을 같이 만드는 식으로 개별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관리해야 한다.

▼ Negotiation Newsletter/협상 성패, 준비 단계서 결정된다
케이와 아이반 부부는 딸 제인 문제로 서로를 피하고 있다. 아이반은 제인에게 사업 종잣돈 1만 달러를 그냥 주려고 한다. 케이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하다. 딸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이들 부부의 문제는 무엇일까. 상대방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당사자들이 준비 단계부터 서로 협의하며 협상의 탄탄한 토대를 마련했다면 이런 상황은 피했을지도 모른다. 협상 준비 과정이 본협상만큼 중요한 이유다.

▼ 전쟁과 경영/통조림의 위력:우린 적어도 굶어죽진 않는다
1942년 버마(현 미얀마)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15군은 정글 지대를 통과해 인도 북부지역의 인팔을 점령하는 작전을 세웠다. 일본군은 험악한 도로와 정글을 뚫고 나가야 했다. 문제는 식량 등의 보급이었다. 일본군은 오래전 이 루트를 정복했던 칭기즈칸의 군대처럼 수천 마리의 양과 소를 끌고 전투에 나섰다. 통조림을 먹는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승리를 거뒀을까. 전쟁에서 승리하고 최고의 생산성을 올리려면 기본적인 욕구 해결이 필요하다. 기업이라고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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