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스웨덴 백화점서 쫓겨난 북한산 청바지 ‘노코 진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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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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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싼지 ‘가치 설득’ 못한 게 패인
스톡홀름 아웃렛에서는 잘 팔려

북한에서 만든 청바지 노코 진스. 스웨덴의 한 백화점에서 퇴출된 후 아웃렛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DBR 사진
북한에서 만든 청바지 노코 진스. 스웨덴의 한 백화점에서 퇴출된 후 아웃렛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DBR 사진
얼마 전 ‘노코 진스(Noko Jeans)’라는 청바지가 화제가 됐다. 노코 진스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북한에서 만든 청바지다. 엄밀히 말하면 스웨덴의 세 젊은 사업가가 북한에 위탁생산한 1100벌의 상품이다.

2009년 12월 5일 노코 진스는 스웨덴의 한 고급 백화점에 출시됐으나 2시간 만에 북한의 노동 환경을 문제 삼은 백화점에 의해 퇴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노코 진스 측은 “앞으로는 중국산 제품도 모두 수거하기 바란다”고 반박했다. 특이한 점은 양측 모두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경영적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수사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노코 진스의 홈페이지는 ‘제품 탄생 비화’를 알리는 동영상과 사진, 설명으로 꾸며져 있다. ‘밤이 되면 불이 꺼져 어두운 도시 평양…. 북한의 가장 큰 의류 회사에서 생산을 거부해 북한의 가장 큰 광업 회사에서 만든 청바지…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다. 우리는 그 나라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홈페이지 어디에도 ‘왜 소비자들이 비슷한 가격대(약 25만∼27만 원)의 게스나 리바이스 등 유명 청바지를 놔두고 노코 진스를 사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 논리와 근거는 나와 있지 않다. 물론 ‘노코’라는 신생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최근 각광받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케팅 전문가들은 스토리텔링의 효과는 상품 가치를 명확하고 진솔하게 전달하는 진실의 힘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들은 과장된 포장이나 허구의 이야기에 속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확한 가치 제언이 없는 스토리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매킨지가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2년간 18%의 소비자들이 과거 구매하던 소비재 상품보다 낮은 가격의 상품을 구매했다. 이들 중 46%가 ‘저가 상품이 기대했던 것보다 품질이 좋았다’고 응답했다. 34%는 ‘이젠 예전에 구매하던 프리미엄 상품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41%는 ‘프리미엄 상품이 가격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 조사 결과는 불황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저가=불량’이라는 고정관념까지 깨뜨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가격이 싸면서도 품질이 양호한 브랜드가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가치 소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서 아쉬움이 섞인 의문이 든다. 왜 노코 진스는 북한에서 생산하는 저비용의 이점을 살리는 마케팅 전략을 택하지 않았을까? 왜 노코 진스의 가격 대비 품질에 대해 자신 있게 밝히지 않았을까?

노코 진스는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아웃렛 매장에서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노코 진스 측이 몇 벌이나 팔렸고 매출이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이 청바지를 백화점이 아닌 아웃렛 매장에서 팔고 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북한산 제품이 해외 시장에 나와야 북한의 경제도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북한 주민의 생활이 나아지길 진정으로 바라는 사업가라면, 고객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주지 못하는 상품은 아무런 수익도 돌려주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인재 기자 epicij@donga.com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9호(2010년 1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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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재형 교수의 의사결정 미학(美學)/직관+이성, ‘판단의 정석’을 갖춰라
엘리베이터의 수가 적어 불편한 빌딩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집중한다. 운행 방법을 바꾸거나 속도를 올리는 해법을 낸다. 대안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적인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해법을 생각해낸다. 대안에 매몰되지 않고, 가치 중심의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오류를 초래하는 인간 정보처리시스템의 한계와 원인을 소개한다.

▼ Competitive strategy in Practice/기업, 때론 소비자 가르쳐야
21세기 소비자는 기업이 물건을 판매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주체이자 새로운 원천이다. 애플처럼 소비자와 함께하는 경영전략으로 성공하는 기업이 되려면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소비자 커뮤니티를 움직인 후, 소비자의 개인적 경험을 같이 만드는 식으로 개별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관리해야 한다.

▼ Negotiation Newsletter/협상 성패, 준비 단계서 결정된다
케이와 아이반 부부는 딸 제인 문제로 서로를 피하고 있다. 아이반은 제인에게 사업 종잣돈 1만 달러를 그냥 주려고 한다. 케이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하다. 딸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이들 부부의 문제는 무엇일까. 상대방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당사자들이 준비 단계부터 서로 협의하며 협상의 탄탄한 토대를 마련했다면 이런 상황은 피했을지도 모른다. 협상 준비 과정이 본협상만큼 중요한 이유다.

▼ 전쟁과 경영/통조림의 위력:우린 적어도 굶어죽진 않는다
1942년 버마(현 미얀마)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15군은 정글 지대를 통과해 인도 북부지역의 인팔을 점령하는 작전을 세웠다. 일본군은 험악한 도로와 정글을 뚫고 나가야 했다. 문제는 식량 등의 보급이었다. 일본군은 오래전 이 루트를 정복했던 칭기즈칸의 군대처럼 수천 마리의 양과 소를 끌고 전투에 나섰다. 통조림을 먹는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승리를 거뒀을까. 전쟁에서 승리하고 최고의 생산성을 올리려면 기본적인 욕구 해결이 필요하다. 기업이라고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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