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쟁으로 치열해진 ‘현대차 vs 기아차’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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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그랜저 고객층을 상당 부분 뺏어올 겁니다.”

24일 기아자동차 준대형 세단 K7 신차발표회에서 기아차 국내 마케팅 담당자는 ‘형제회사’ 현대차의 그랜저를 경쟁대상으로 꼽았다. 세계 자동차업체 간 인수합병에 이어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빅3’의 몰락으로 글로벌 자동차 판매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국내 선도업체인 현대·기아차그룹도 내부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가족회사인 현대차와 기아차가 서로를 공략대상으로 지목하면서 판매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끈끈하기만 하던 협력업체와의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 현대차, 내부경쟁 체제 강화

기아차 국내 마케팅 담당자는 “K7의 3.5L 최고급 모델의 경우 제네시스와 비교해도 차 길이가 불과 1cm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성능 면에서도 제네시스와 경쟁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K7은 가격대가 2840만∼4130만 원으로 국내 준대형 세단의 베스트셀링 모델인 그랜저와 큰 차이가 없지만, 그랜저에선 찾아볼 수 없는 ‘차선이탈 경보장치’나 ‘웰컴 시스템’과 같은 첨단 사양이 들어가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달 그랜저TG의 판매대수는 4677대로 국내 전체 대형차 시장의 43.6%를 차지했다. 기아차는 K7의 내수시장 점유율 목표를 40% 이상으로 잡고 있다. 현대차로서는 그랜저의 시장점유율 하락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기술개발과 구매 분야를 총괄본부로 묶어 함께 운영하지만 영업과 마케팅 조직은 분리해 서로 경쟁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현대·기아차의 국내 영업 및 마케팅 임원들은 매달 상대편 계열사의 판매 대수부터 챙겨 본다. 양사는 그랜저와 K7의 준대형 세단뿐만 아니라 이미 대·중형 세단과 하이브리드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거의 모든 차종에서 최대의 라이벌이다.

예를 들어 기아차가 올해 4월 ‘쏘렌토R’로 인기를 모으자 7월 현대차는 SUV 최초로 연료소비효율(연비) 1등급(L당 15.0km)을 달성한 ‘싼타페 더 스타일’을 내놨다. 해외에서도 기아차 씨드와 현대차 i30는 유럽시장에서 치열한 판매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림대 김필수 교수는 “두 회사가 내수시장을 테스트베드(시험장)로 삼아 발전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를 통해 품질이 검증된 차량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 끈끈한 협력업체 관계도 변화

협력 부품업체들이 자동차회사 눈치를 보는 관행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폴크스바겐 구매설명회에서는 현대차의 주요 협력업체인 A사 관계자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A사는 전체 물량의 90% 이상을 현대차에만 납품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강력한 수직관계로 묶여 있는 국내 협력업체가 다른 완성차에 부품을 공급하려는 시도 자체가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A사 관계자는 “구매설명회 참석 전에 현대차에 미리 알렸지만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며 “오히려 선진 글로벌 기업의 기술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 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협력사가 현대차만 바라보던 시절은 점차 옛말이 돼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해외수출 비중을 계속 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가 부품 경쟁력 확보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협력업체들 간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는 것이 자동차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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