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인증’은 홍보용…들여다보면 기겁할 ‘아파트의 생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3일 13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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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인증만 받고 대부분 본인증 안받아…관리감독 기관도 없어

“우리 아이의 건강한 실내 생활을 생각합니다.”

지난 10월 중순, 한 유명 브랜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가 문을 열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이 아파트 건설회사는 미래 투자가치와 함께 친환경 아파트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근거로 아파트 인테리어에 ‘친환경 8대 마감자재’를 사용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이처럼 친환경 아파트는 이제 대세다. 언제부턴가 친환경은 아파트의 ‘기본사양’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파트 이미지 광고만 봐도 ‘자연이 그리는 아파트’ ‘자연과 함께 산다’ 등 직간접적으로 친환경을 강조하는 내용 일색이다. 광고대로라면 요즘 아파트는 깨끗해서 새집증후군이나 실내 공기오염물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말 그럴까?

◇ 허울뿐인 ‘친환경건축인증제도’


정부는 2002년부터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친환경 건축물을 유도하고 촉진하기위해서다. 하지만 아파트 건설회사들은 친환경을 내세우면서도 대부분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를 외면하거나 홍보용으로만 활용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2002~06년 4년간 친환경건축물 본인증을 받은 아파트는 최우수 2곳과 우수 6곳 등 8곳에 불과하다. 2006년 말 정부가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으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하자 2007년 13곳(최수우 1, 우수12), 2008년 49곳(최우수6, 우수43), 2009년 6월 말 현재 37곳(최우수4, 우수33)으로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적은 숫자. 2002년부터 현재까지 본인증을 받은 아파트는 최우수 13곳, 우수 94곳 등 107곳. “매년 늘고 있다지만 최근 신축 아파트의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건축허가와 사업계획승인 단계에서 ‘예비인증’을 받고, 이를 홍보용으로만 사용한 뒤 ‘본인증’ 절차를 밟지 않는 건설회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002년 이후 현재까지 예비인증을 받은 410곳 중 본인증을 받은 곳이 107곳이니 4분 1정도만 본인증을 받은 셈이다. 더욱이 이를 관리, 감독할 정부부처나 기관도 없다.

◇ 친환경 인증 아파트의 실체

그렇다면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은 아파트는 얼마나 안전할까. ‘주간동아’는 그동안 친환경건축물 최우수 인증을 받은 아파트 13곳 중 최근 2년 사이에 인증을 받은 아파트 8곳의 실내 건축자재를 확인해봤다. 경기도 김포시 H아파트 1~3단지, 성남시 분당구 P아파트와 H아파트 10~12단지, 인천시 연수구 S아파트가 그 대상이다.

현재 환경부는 비교적 까다로운 기준을 세워 친환경 건축자재를 대상으로 ‘환경마크’를 부여한다. 제품 원료부터 생산, 유통, 수거, 폐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과정에 걸쳐 인체에 유해한 오염물질이 일정 기준 이상 발생하지 않는 제품에 한해 인증해준다. 때문에 환경마크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는다. 현재까지는 실내 건축자재를 환경마크 인증자재로 사용했다면 그만큼 친환경적이라고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확인 결과 친환경 최우수 인증 아파트들조차 환경마크 인증 자재를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분당 P아파트의 경우 벽지와 바닥재, 시트 모두 ‘환경마크’ 제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P아파트 건설업체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내 마감재에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실내 공기오염물질 방출량 최소 기준치 이상의 제품을 썼다. 대신 단지 내 설계와 옥상 조경시설, 빗물저장 시스템 등 외부설계를 친환경건축 기준에 따랐다. 최우수 인증을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유명 건설업체가 건설한 분당 H아파트와 김포 H아파트, 인천 S아파트도 상황은 마찬가지. 실내 표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벽지와 바닥, 시트 중에 환경마크 제품을 사용한 곳은 마루뿐이었다. 친환경 인증 아파트가 이 정도니 일반 아파트나 저가 임대아파트의 수준은 어떨까.

◇ SH공사, 대한토지주택공사 등 공공기관도 환경마크 외면

2005년 7월1일부로 시행된 ‘친환경상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친환경촉진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환경부의 ‘환경마크’ 인증을 받은 실내 건축자재만을 사용해야 하는 공공기관들도 이를 어기기는 마찬가지.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일대 ‘은평뉴타운’ 공사를 진행하는 서울시 SH공사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 일대를 개발한 대한토지주택공사, 인천시 연수구 송도 일대 아파트를 개발 중인 인천도시개발공사 등은 바닥과 페인트 등 일부 실내 건축자재는 환경마크 인증제품을 사용했지만, 벽지와 시트 등 주요 부분의 자재는 미인증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 정책총괄과 김효정 사무관은 “특히 건설공사 쪽에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직접적인 제재수단이 거의 없는 데다 인센티브도 약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친환경촉진법을 어겼을 경우 법상 제재수단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전부다. 김 사무관은 “오는 12월부터 특별조사를 실시해 법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는지 그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운영시스템 개선은 물론, 기관의 성과 평가항목에 친환경 상품 구매 실적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710호 커버스토리(아파트의 놀라운 ‘쌩얼’)는 이처럼 ‘친환경’으로 포장된 아파트의 실체와 함께 △환경호르몬 물질인 ‘프탈레이트’가 벽지와 장판에만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내막 △10억원짜리 ‘욕망의 바벨탑’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아파트의 자화상 △인문․사회학적으로 바라본 아파트와 그 미래 △일그러진 아파트 공동체 문화의 현주소 △아파트 실내 오염물질과 질병의 상관관계 & 고통 받는 환자들 △‘친환경’ 표현 둘러싼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공기청정협회의 법정 공방 △최첨단과 초고층화 등 아파트의 진화에 따른 주거문화의 변화 △고소공포, 귀울림, 정신질환 등 초고층 병리현상의 실체 등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점을 입체적으로 진단했다.

주간동아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자세한 내용은 주간동아 710호(11월10일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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