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보다 상생… 재계3세 유연성-네트워킹 꽃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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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일 03시 00분


친분 두터운 이재현-김담-정용진
대형 쇼핑몰 ‘타임스퀘어’ 출발 성공시켜
이재용-정의선은 차량 반도체 개발 협력


올해 9월 16일 서울 영등포에서 개장한 쇼핑몰 ‘타임스퀘어’는 한 달여 만에 방문객 600만 명을 넘기며 지역 명소로 떠올랐다. 타임스퀘어의 성공 키워드는 37만 m²에 달하는 공간 전체를 활용하는 ‘배치(配置) 전략’과 두 백화점을 합친 ‘대형화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타임스퀘어의 운영사업자인 경방은 유동인구가 많은 영등포역과 신세계백화점에서 250m 떨어진 반대편 끝에 CGV영화관과 이마트, 교보문고를 입점시키는 배치 전략을 짰다. 영화를 보거나 마트를 찾는 방문객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쇼핑몰 곳곳으로 이어졌다.

경방은 또 영등포 상권의 맹주인 롯데백화점에 대항하기 위해 옛 경방필백화점을 신세계백화점과 합쳐 덩치를 키웠다. 경영 주도권 다툼이 생길 수 있었지만 경방은 운영 노하우가 많은 신세계에 백화점 경영을 맡기고 수익의 56%를 나눠 받는 위탁경영을 도입했다.

자칫 운영주체나 이익배분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이 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진 것은 각 회사 창업주의 손자(3세)들로 평소 친분이 두터운 김담 경방 부사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이재현 CJ 회장의 상호 협조가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경쟁 관계인 회사 간에 입점과 위탁경영 등 다소 ‘도발적인’ 사업계획을 실천하는 것은 최고경영자(CEO) 사이의 오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재계 3세 경영자들의 유연함과 이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타임스퀘어 성공의 배경이라는 경제계의 평가도 이 때문에 나온다.

3세 경영의 특징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간 ‘교류’에서도 잘 나타난다. 삼성그룹은 2007년 기아자동차의 오피러스를 임원 업무용 차량으로 도입한 바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자동차용 반도체 개발에 서로 손을 잡은 것도 평소 친분이 두터운 이 전무와 정 부회장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무는 SK의 2세 경영인인 최태원 회장과도 가까운 사이다. 두 사람은 올해 6월 삼성전자 경기 수원 사업장에서 만나는 등 휴대전화와 이동통신 사업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국내 1위인 두 회사의 밀월(蜜月) 때문에 KT, LG텔레콤과 같은 2, 3위 이동통신 업체들이 휴대전화 신(新)모델을 SK텔레콤보다 늦게 공급받을 정도라고 한다.

정의선 부회장이 최근 한진그룹의 3세 경영인인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에게 “현대차의 앨라배마 공장이 위치한 몽고메리 시에 미국 직항 노선 개설을 검토해 달라”고 직접 요청한 것도 재계 3세 네트워크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 재계의 전통은 협력보다는 경쟁이 앞섰다. 같은 사업 분야를 놓고 서로 진출하려고 다퉜다. 1960년대 삼성의 전자 사업 진출 때문에 사돈 관계였던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구인회 LG 창업주가 갈라섰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각자 자동차와 전자 사업에 의욕을 갖고 있었던 삼성과 현대가(家)도 1990년대에 갈등을 겪었다.

경영 전문가들은 1960, 70년대 출생인 3세 경영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경쟁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창업주 세대와 달리 어려서부터 친밀한 관계를 맺고, 해외유학 등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유연함과 네트워크에서 강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영역 간 장벽이 무너지고 사업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컨버전스(융합) 시대에 맞는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3세 경영인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다 기존 사업부문의 시너지를 높이는 데 치중하는 것은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3세 경영인들은 맨땅에서 사업을 일구는 개척 정신과 한 분야를 맡아 성공까지 책임지는 뒷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존 사업기반에 매달리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3세들은 인적 네트워크 등 경영에 필요한 사회적 자본을 많이 갖고 있어 코피티션(Co-petition·협력+경쟁)이 요구되는 미래 시장환경에서 유리하다”면서도 “과감한 도전을 통해 사업 역량을 입증하는 것은 그들에게 던져진 숙제”라고 지적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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