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회사-지역 특산물 만나 名酒를 낳다

  • 입력 2009년 10월 5일 2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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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미(黑米) 레드 와인, 고구마 소주, 마늘 막걸리, 곤드레 막걸리…. 이런 전통주 들어보셨나요?

연구개발(R&D)과 마케팅 능력을 갖춘 주류회사와 지역 특산물이 만나면서 새로운 전통주 시장이 열리고 있다. 국순당 배상면주가 등 전통주 회사들은 쌀과 밀 위주였던 기존 술 제조에서 벗어나 배, 고구마, 마늘 등을 이용한 양조 기술을 잇달아 개발하고 나섰다.

농산물 판매 부진으로 시름이 깊던 농가도 숨통이 트이게 됐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산하 연구소 등에 기술개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적극적이다. 이에 따라 특산물을 이용한 전통주가 자치단체와 기술연구원, 농가, 제조업체를 연결하는 새로운 농업 클러스터 사업 모델로도 급부상을 하고 있다.

●지역 농가와 손잡고 윈윈(Win-Win)

국순당은 2005년부터 '지역명주 키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 특산물에 전통주 발효 기술을 적용시켜 지역 명주(名酒)로 키우는 사업이다. 2006년 강원도 정선군의 특산물인 오가자를 이용한 '명작 오가자'를 선보였고, 2007년에는 전북 고창군 심원면과 손을 잡고 '명작 복분자'를 내놓았다. 올해는 '고구마 소주'를 만들기 위해 경기 여주군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고봉환 국순당 마케팅 팀장은 "각 지역 명주는 국순당과 농민들이 출자를 한 농업회사법인에서 만들어지는데 농민들은 작물을 재배하고, 국순당은 그 작물을 전량 사들여 제품으로 생산하고 마케팅을 도와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명작 오가자'도 정선군 농민들이 30%, 국순당이 70%의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국순당 정선명주㈜'에서 탄생했다. 농민이 주주로 참여한 이 법인은 최근 사업을 확장해 정선의 특산품인 곤드레 나물과 황기를 원료로 한 막걸리까지 내놓았다. '명작 복분자' 역시 심원면의 복분자 재배 농민 420명이 15억 원, 국순당이 6억 원을 출자한 '국순당 고창명주㈜'에서 생산되고 있다.

배상면주가는 올 7월 전남 나주시의 대표 특산주였던 '봉황농협 배술'의 가공공장을 인수했다. 이 배술은 1995년 배로 유명한 나주 지역의 농협 10여 곳이 연합해 가공공장을 세우면서 출시됐지만, 고전을 면치 못해 지난해 생산이 중단됐다. 이 때문에 연간 7만5000t의 배를 생산하는 나주 농가도 어려움이 커졌다. 지난해부터 지역 특산물을 브랜드화하는 사업을 시작한 배상면주가가 나주의 배술을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특산물로 유명한 10개 지역과 협약을 맺고 전통주를 출시할 계획인데, 나주에 양조 시설이 버려져 있어 우선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지원도 이어져

부산의 주류업체인 ㈜천년약속은 농림식품수산부 및 부산 기장군 등과 손잡고 흑미로 만든 레드 와인 '천년약속 레드 프라임'을 개발했다. 처음 시작은 우연이었다. 2006년 말 천년약속 연구소를 방문한 기장군 농림과 직원들이 실패 단계에 있었던 흑미 와인을 맛본 게 계기가 됐다.

이동은 천년약속 브랜드마케팅 차장은 "당시 찾아온 기장군 관계자들에게 '인근에 좋은 유기농 흑미 농장이 있는데 군과 함께 흑미 와인을 개발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천년약속은 공장이 위치한 기장군에서 대표 장수 식품인 흑미를 술로 빚는 방법을 고민해 왔지만 특유의 침전물 때문에 계속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때였다.

그 뒤 천년약속의 흑미와인은 2007년 기장군 '향토사업 육성 사업'에 선정돼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을 받고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 차장은 "자금력이 약한 향토기업 입장에서는 자치단체와 함께 제품 개발에 나서면 자금 등 여러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치단체가 먼저 전통주 개발에 발 벗고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은 지난해 여주 특산물인 자색고구마로 만든 막걸리 개발에 성공했다. 강희윤 원예연구과 박사는 "기존에 고구마 막걸리가 있었지만 자색이 오래가지 않는 게 문제였는데 살균 기술로 선명한 색을 유지할 수 있게 돼 업체에 기술을 이전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은 경기 쌀로 막걸리를 만들던 배혜정누룩도가에 넘겨졌다. 배혜정 사장은 "일본 수출용으로 제품을 생산했는데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주문이 쇄도해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경남 남해군에서 마늘막걸리를 생산하는 초록보물섬도 남해마을연구소와 공동 연구로 술에서 마늘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해 출시 두 달 만에 10만 병을 판매했다. 류은화 초록보물섬 대표는 "남해군은 쌀과 마늘이 많이 남아서 고심하는 곳인데 마늘막걸리로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혜승기자 fineday@donga.com

박재명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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