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화웨이’ 질주 서프라이즈!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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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20년 만에 통신장비업 세계 3위 돌풍

값싼 고급인력으로 R&D 집중
주주 100% 전현직 직원 ‘주인의식’
4세대 통신기술 특허 12% 보유
시장점유율 노키아-지멘스 위협
한미일서 공격적 영업 1위 꿈꿔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중국 선전에서 작은 통신 장비 회사 하나가 문을 열었다. 소규모 전화 교환기를 수입해 유통시키는 중소기업 ‘화웨이(華爲)’였다. 직원 수십 명에 ‘중화민국을 위한다’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창업한 이 작은 회사는 10년 만인 1998년 처음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더니, 또 다른 10년이 지나자 올해 예상 수주액이 300억 달러(약 36조 원)에 이르는 세계 유수의 통신장비 업체가 됐다.

○ 값싼 고급 인력

통신장비 산업은 전통적으로 ‘면도날처럼 얇은 이익률’을 유지하며 경쟁한다. 장비를 만들면 통신사에 팔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나라가 통신업을 기간산업으로 보호하기 위해 통신사 수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살 사람은 적은데 팔 사람은 많아서 장비 업체가 높은 이윤을 올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화웨이는 계속 성장했다. 초기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시장 덕을 봤고, 최근 10년은 해외 시장을 효율적으로 공략했다. 지난해 이 회사 매출의 75%가 해외에서 나왔다. 이런 성공적인 해외 시장 진출의 비결은 ‘값싸고 수준 높은’ 연구개발(R&D) 인력이었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중국에선 가능하다. 화웨이는 직원 8만7000여 명 가운데 42%가 R&D 인력이고, 중국 본토의 직원 1만3000명 가운데에는 R&D 인력이 50%가 넘는데 이들 대부분을 중국에서 채용한다. 물론 해외 R&D 센터에는 현지인을 채용하지만 중국 R&D 센터는 100% 중국인으로 구성된다. 기술이 경쟁력의 핵심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은 기술 인재를 채용하려고 세계의 명문대를 돌며 인재를 발굴하지만 화웨이는 매년 신규 인력을 중국 대학 졸업생으로만 채용한다.

판야오(潘遙) 화웨이 한국지사장은 “중국이 통신 시장을 외국 기업에 개방한 덕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고 중국인 인재의 수준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해외 업체들도 중국에 R&D 센터를 세우면 이런 장점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본사가 위치한 모국(母國)에 메인 R&D 센터를 두고 있어 화웨이를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값싼 고급인력’들을 유지시키는 건 독특한 기업 지배구조다. 화웨이는 주주의 100%가 이 회사의 전현직 직원이다. 비상장기업이라 주가를 관리할 필요가 없어 배당금도 많다. 이 때문에 이 회사에는 배당 수익이 연봉보다 많은 직원이 상당수 존재한다.

○ 새로운 경쟁력

가격 경쟁력은 기업과 국가가 발전하면 결국 후발 주자에게 따라잡힌다. 그래서 화웨이는 단순히 제품 가격을 낮추는 대신 관점을 바꿨다.

예를 들어 이들은 유럽에서 분산 기지국(DBS·Distributed Base Station)이란 통신장비를 만들 때 건물 옥상에 설치하도록 제작했다. 개발비가 늘어나 장비 자체는 가격 경쟁력이 없었다. 그 대신 땅값이 비싼 유럽 지역에서 이 제품은 ‘통신장비를 놓을 공간의 임대료’를 크게 절약해 줬다. 화웨이 제품은 가격이 다소 비쌌지만 구입하는 회사는 결국 총비용을 아낄 수 있어 인기를 모았다.

이렇게 세계 통신장비 시장의 경쟁이 심해지자 알카텔과 루슨트, 노키아와 지멘스는 2006년 각각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화웨이는 이런 합병 없이도 올해 1분기(1∼3월) 세계 시장 점유율 3위였던 알카텔-루슨트를 추월했고, 2분기(4∼6월)에는 17%의 시장점유율을 올리며 2위인 노키아-지멘스(20%)도 턱밑까지 따라잡았다.

○ 차세대 시장의 강자

화웨이는 차세대 시장인 4세대 통신기술(LTE) 시장에서 기술로도 경쟁사들을 압도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2008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적재산권을 출원한 기업이 바로 화웨이였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LTE 특허였고, 화웨이는 현재 세계 LTE 특허의 12%를 보유했다. 단일기업으로 세계 최대다.

화웨이는 이미 유럽과 중남미 등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거나 곧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은 곳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시장뿐이다. 판 지사장은 “미국과 일본, 한국 세 나라는 강력한 이동통신사들이 존재하고 현지 장비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은 데다 정부가 시장을 보호한다는 점이 매우 유사하다”며 “우리는 이 세 나라 가운데 한 곳에서라도 성공을 거두면 그 노하우로 다른 두 나라도 공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가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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