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 바꿀 돈으로 車 한대라도 더…”

  • 입력 2009년 9월 15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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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조립3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섀시 작업을 하고 있다. 렉스턴 카이런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근로자가 구조조정으로 절반가량 줄었지만 생산성과 품질은 오히려 높아졌다. 평택=원대연 기자  ☞사진 더 보기
11일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조립3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섀시 작업을 하고 있다. 렉스턴 카이런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근로자가 구조조정으로 절반가량 줄었지만 생산성과 품질은 오히려 높아졌다. 평택=원대연 기자 ☞사진 더 보기
직원들 눈빛이 달라졌다
시간당 생산, 파업前17대서 22대로
기피하던 ‘표준작업표’ 내달 시행

파업 후유증도 현재진행형
협력사 고통분담에도 지원 난관
‘극한투쟁’ 부정적 꼬리표도 여전

■ 쌍용차 평택공장 르포

“어제 희망퇴직한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였는데 미안함과 측은함이 섞여 복잡한 심경이 되더군요.” 11일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조립3공장에서 만난 김춘식 조립3팀 차장은 회사를 떠난 동료들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쌍용차는 경제위기 이후 대주주였던 상하이차가 떠나자 올 4월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 1670명이 희망퇴직을 했다. 이 외에도 지난달 6일 파업 타결과 함께 정리해고 대상자 974명 가운데 468명은 무급휴직으로 회사에 남고, 506명은 정리해고됐다.

김 차장은 “술자리에서 만난 동료들은 불황으로 대부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실업 급여를 신청해서 겨우 생활비를 충당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한 조립공장 근로자는 “쌍용 출신이라고 하면 극한투쟁을 벌인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녀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해고자도 여럿”이라고 했다.

○ 떠난 자와 남은 자

“감원으로 작업량이 늘어 힘들긴 하지만 회사를 떠난 동료들의 몫까지 대신 일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영호 쌍용차 평택공장 조립3팀 차장은 파업이 끝나고 생산현장에 복귀하니 일하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직원들의 근무자세가 바뀌면서 쌍용차의 생산성은 크게 높아졌다. 시간당 생산대수(JPH)가 파업 전 17대에서 현재 22대로 29.4%(5대)나 증가했다. 이 차장은 “파업 이후 근무에 임하는 직원들의 눈빛부터 달라졌다”며 “오전 8시 30분 근무시간에 맞춰 나오던 직원들이 이제는 오전 7시 40분이면 출근해 자신이 맡은 생산라인을 점검한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생산라인 근로자들의 작업 동선과 품질 및 안전점검 항목 등을 정한 ‘표준작업표’를 새로 만들어 다음 달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표준작업표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직원들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기피해 거의 쓰이지 않았다. 한 생산라인 직원은 “생산성 제고를 위해 표준작업표 도입이 필요하다고 직원들 스스로가 판단한 것”이라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민주노총 탈퇴는 달라진 노사관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극한투쟁으로 일관한 노조 이미지를 버려야 회사가 살 수 있다는 직원들의 인식이 현실로 반영된 것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1년 이상 무급 휴직하고 있는 파업 참여 노조원들이 회사에 복귀하면 달라진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회사가 정상화돼야 무급휴직자들이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사치스러운 고민이다.

쌍용차의 불안한 노사관계는 진행형이기도 하다. 회사 측은 14일부터 해고자의 출입을 막기 위해 전 직원의 출입카드를 교체하고 정문에 출입통제 장치를 새로 설치했다. 회사 측은 파업 기간에 정문을 지키려고 동원한 용역 직원들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출범한 노조 2기 집행부 내 해고자들이 사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협력업체들 “희생하는 만큼 지원 필요”

현장 근로자들이 생산성 향상에 나서는 동안 쌍용차 연구원들은 회생의 승부수로 밀고 있는 신차(新車) ‘C200’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자동차 연구소의 심장부인 엔진시험실(제2시험동)은 총 19개 셀(시험장) 가운데 10개 셀이 C200 개발 업무에만 투입됐다. 11일 시험동에 있던 연구원 20여 명은 엔진의 연료소비효율(연비)을 비롯해 성능 테스트, 튜닝 작업 등을 하고 있었다. 김종혁 수석연구원은 “파업 기간에 시험설비를 직접 다루지 못해, PC방이나 협력업체에 나가 신차 관련 보고서 등을 e메일로 주고받을 때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며 “이제는 주말에도 연구실에 나와 원 없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쌍용차와 운명을 같이하는 협력업체들도 쌍용차 회생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4일 쌍용차협동회채권단은 이달 판매대수 중 4000대까지만 대금을 받고, 나머지는 쌍용차가 어느 정도 정상화한 후에 받기로 결의했다. 쌍용차의 운영 자금난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배려다. 협동회채권단 최병훈 사무총장은 “쌍용차 회생을 위해 채권 변제율을 낮춰주는 방안에 동의할 의향이 있을 정도로 협력업체들은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며 “정부도 신차 개발 지원 등을 비롯해 각종 자금 지원에 적극 나설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평택=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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