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펀드 유혹속엔 毒도 숨어있다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20일 오전 11시. 한국, 대만, 홍콩의 기자 20여명이 자신의 책상 앞에서 전화기를 들었다. 세계적 자산운용회사인 피델리티의 이머징마켓 전문가인 티이라 찬퐁상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인도시장에 대해 논의하는 전화회의(콘퍼런스 콜)를 열었기 때문이다.

찬퐁상 매니저는 “인도의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으며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5.1%에 이를 것”이라며 “인도시장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강력한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8일에는 중국의 5대 증권사 중 하나인 자오상(招商)증권의 리서치센터장이 한화투신운용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하반기부터 중국 기업들의 이익이 살아나기 시작해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도 나올 수 있다”며 중국에 투자하라고 권했다.

글로벌 주식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다시 해외펀드 투자를 권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 이머징마켓의 주가가 곤두박질칠 때 잠 못 이루던 해외펀드 투자자들은 다시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살아나는 지역의 해외펀드에 투자하라는 논리에는 적지 않은 ‘함정’이 숨어 있다.

○ 성장률과 주가는 동반상승 안해

많은 국내 투자자에게 해외펀드는 이머징마켓 펀드를 의미한다.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넣어 두려는 포트폴리오형 투자 목적보다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주로 해외펀드를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성장한다고 무조건 주가가 뜨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경제의 고도성장기에는 주가가 게걸음질치다가 안정적 성장기에 주가가 뜬 사례가 많다.

1980년대부터 1998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의 GDP는 매년 6∼11%로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이 기간에 코스피는 1,000을 뚫으려 세 번을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했다. 증권가에서는 매번 1,000을 뚫을 때마다 ‘2,000도 머지않았다’ ‘4,000까지 간다’는 보고서가 등장했고 그때마다 시장의 비웃음을 샀다. 지수 1,000은 ‘마의 1,000’으로 불리며 넘지 못할 산쯤으로 인식됐다.

오히려 GDP 성장률이 2∼5%로 접어든 2000년대 중반부터 코스피가 급등해 2007년 한때 2,000을 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경제성장률이 높지 않고 금리가 하향 안정된 시점부터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

굿모닝신한증권 문기훈 리서치센터 본부장은 “개발도상국은 성장잠재력은 높지만 금융시스템과 환경이 열악해 주식시장이 불안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식회계도 문제고 기업의 실적이 정치적 요소나 외부의 악재에 쉽게 흔들린다는 뜻이다.

또 다른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경제성장기에는 많은 기업이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IPO)해 자본을 조달한 뒤 이를 설비투자 등에 쓰려고 한다. 상장기업도 마찬가지 이유로 증자를 많이 한다. 주식 수가 늘어나면 주가는 뜨기 힘들다. 한국의 코스피가 1,000을 안정적으로 넘어선 시점도 대형 기업의 IPO가 뜸해진 시기와 일치한다.

○ 그런데 왜 해외펀드를 독려하나

이런 맹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산운용회사가 주축이 돼 해외펀드 판매를 독려하는 건 이유가 있다. 주가의 등락폭이 크지만 흐름을 잘만 타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 비해 해외 주식형 펀드를 팔면 판매수수료 등으로 투자자가 부담하는 비용이 커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의 투자자 부담률은 2.01% 수준이지만 해외펀드는 2.23% 수준이다. 일부 해외펀드는 4%대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도 해외펀드에 투자하고 싶다면 장기투자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국재무설계 오종윤 대표는 “개발도상국에 투자하는 해외펀드는 국내펀드보다 더 오래 기다린다는 생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전화회의에 나선 찬퐁상 매니저는 ‘장기투자의 적절한 기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적어도 2년”이라고 답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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