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지난 ‘2인자’라고? 자기혁신 옛기술의 반격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 제품이 쏟아지면서 옛 기술은 얼마 안 있다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액정표시장치(LCD)보다 우월해 ‘꿈의 디스플레이’라고도 불리던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디스플레이, 백열전구보다 전기는 10분의 1밖에 안 쓰고 수명은 10배 이상이라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2세대(2G) 이동통신망인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보다 10배 이상 빠르다는 3세대(3G) 이동통신망인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하지만 옛 기술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LCD, 백열전구 등 옛 기술들이 자기혁신을 통해 신기술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 자기혁신으로 무장한 옛 기술

LG전자는 다음 달 ‘HD LCD’라는 LCD 화면을 채택한 휴대전화 ‘뉴초콜릿폰’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는 삼성전자와 노키아 등 경쟁업체들이 잇달아 내놓은 AMOLED 화면과 경쟁하는 휴대전화인데 오히려 구식 기술을 채택한 것.

AMOLED는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LCD와 달리 화면의 점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낸다. 이 때문에 색상도 더 화사하고 두께도 얇다. LCD로는 상대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LG전자는 LCD TV를 만들며 익힌 화면보정 기술을 휴대전화에 적용해 화질을 높였고 제작 공정을 개선해 두께도 줄였다. 게다가 LCD는 AMOLED보다 훨씬 값싼 기술이라 휴대전화의 가격 경쟁력도 높아졌다.

네덜란드의 가전회사 필립스도 ‘할로게나 에너지세이버’라는 백열전구로 최근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실 백열전구는 LED 조명에 밀려 곧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LED가 백열전구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를 쓰면서 수명은 10배 이상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립스는 기존 백열전구보다 에너지 효율이 30∼47% 높고 수명도 3배 이상 긴 개량형 전구를 만들었다. 백열전구의 노란 불빛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이 제품에 열광했다. 이 전구는 기존 백열전구보다 비싸지만 LED 조명 가격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통신기술에도 이런 현상이 있다. LG텔레콤은 경쟁사인 SK텔레콤과 KT가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한 WCDMA 이동통신망을 만들자 경쟁을 벌이는 대신 구식 기술인 2G 통신망 CDMA를 조금 개선해 ‘리비전A’라는 통신망을 만들었다. 그리고 경쟁사보다 싼 ‘오즈(OZ)’라는 서비스로 지난 1년 동안 약 9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OZ 요금은 월 6000원으로 경쟁사의 비슷한 요금제가 1만 원 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저렴하다.

● 엎드려 기회를 노린다

옛 기술을 개량하면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시장에서 2, 3위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 ‘2인자 기업’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신기술 투자비용을 아껴 ‘차차세대’ 기술에 선행 투자하면 ‘미래의 1위’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술 격차가 소비자에게 큰 차이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LG텔레콤은 ‘조금 빠른’ 3G 통신망에 투자하는 대신 아예 다음 세대 기술인 4세대(4G) 통신망에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필립스도 차세대 LED 조명을 지금 본격적으로 판매하기보다 시장이 열릴 때를 대비해 특허 출원 등 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LG전자는 4인치 미만의 휴대전화 화면에서는 소비자가 차이를 느끼기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TV처럼 대형 제품에 쓰일 만큼 발전할 때까지 개량된 LCD 기술로 높은 이익을 낸다는 게 이 회사가 밝힌 전략이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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