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글로벌 경제위기’ 1년도 안돼 수습조짐

  • 입력 2009년 8월 8일 02시 59분


《지난해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 전문가들은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위기’라며 극심한 공포감을 드러냈고 “최소 3년 이상은 위기가 지속될 것” 등의 비관적 전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물론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금융 분야만큼은 ‘100년 만의’ 위기가 불과 1년도 안 돼 종료됐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달 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경기침체가 끝났다(The Recession is Over)’는 도발적인 제목의 표지기사를 실으며 이 같은 논쟁을 더욱 부채질했다. 다만 실물경제의 회복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신중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금융이어 실물도 ‘회복의 싹’… 재정-고용악화 마음놓긴 일러

美 집값 34개월만에 반등… 유럽 제조업 5개월째 호전
각국 신속한 공조체제 주효… 지나친 공포심리도 안정세
재정축소땐 대안 안보여… 위기수습 후유증 대비해야

○ 금융시장 위기는 수습 국면

금융시장의 위기 국면은 이미 올 4, 5월 증시 등 자산시장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면서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각국 정부 및 금융회사들의 심각한 유동성 위기나 증시 폭락세 등의 긴급 상황은 이때쯤 벗어났다는 뜻이다.

각국 증시의 최근 반등세는 이 같은 흐름을 대변한다. 미국 다우지수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주가지수는 지난달 중순 이후 한 달째 거의 수직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자금 흐름의 대표적인 가늠자인 리보(LIBOR) 3개월물 금리도 지난해 10월 4.8%대까지 치솟았지만, 6일 현재 0.46%를 기록하며 10분 1 밑으로 떨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계 금융시장이 예상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은 이유로 다소 힘 빠지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마디로 최근의 회복세가 이상하다기보다는 작년에 했던 전망이 지나치게 비관적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5일자 칼럼에서 “기업들이 지난해 엄청난 충격에 대응해 상품 재고를 과도하게 줄였는데, 이것이 실수였음이 이제야 증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외 기업들은 수요 급감을 예상해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생산량을 20% 이상 줄였지만 지금은 의외로 소비심리가 일찍 되살아나면서 멈췄던 공장을 다시 돌리느라 바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 초기 정부, 기업, 투자자 모두 위기의 원인과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자 공황심리가 극단으로 치달은 것이다.

또 지난해 말 동시다발적 금리 인하로 출발해 올 4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로 완성된 국제공조체제도 금융위기 탈출의 일등공신이었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는 “작년의 공포감이 너무 심했다 싶어 반등하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도 각국 정부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충격요법을 일제히 쓰면서 시장이 빠르게 살아났다”고 설명했다. 중국 등 세계 경제의 새로운 기관차로 부상하는 신흥 대국들의 빠른 회복세가 위기 수습의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도 많다.



○ 위기 이전 수준 회복은 오래 걸릴 듯

실물경제 지표에서도 ‘회복의 싹’이 일부 나오고 있다. 다만 회복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하기엔 다소 무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20개 대도시 집값은 5월 34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달 대비 상승세를 나타냈다. 외신들은 “이번 위기의 원인이었던 주택가격 하락세가 마침내 진정되고 있다는 신호”라며 환호했다. UBS와 무디스 등도 미국의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줄줄이 상향 조정했다. 일본의 2분기 산업생산지수는 전 분기보다 8.3% 상승해 1953년 이후 최대 상승률을 나타냈으며, 유럽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가 5개월 연속 상승하는 등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가 여전히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하면서 “점진적으로 회복되긴 하겠지만 잠재성장률은 상당 기간 과거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위기의 ‘최종 탈출’을 선언하려면 세계 경제가 이전 수준의 높은 성장세를 회복해야 하는데, 금융부문의 안정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 즉 투자를 촉발할 신성장동력이 필요한데 미래의 경제를 이끌어갈 기관차는 안갯속이다. 녹색경제, 나노 및 바이오 신기술 등은 아직 비전 수준이지 가시적인 성과물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투자의 부족은 실물경기지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고용지표를 끌어내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미국의 경제관료들은 “경기침체가 완화되는 조짐이 있지만 미국 경제가 충분한 고용을 다시 창출하도록 성장하기까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신중모드를 버리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에 따르면 유럽의 6월 실업률은 9.4%로 1999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미국 역시 10%에 육박하고 있다.

○ 다시 위기로 돌아갈 리스크도 곳곳에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재 글로벌 경제상황에 대해 “급속한 추락은 이제 없을 것으로 보지만 언제든지 금융위기 상황으로 되돌아갈 위험요인들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이 꼽고 있는 가장 큰 ‘위험요인’은 각국의 재정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각국에 재정적자가 쌓이면 쌓일수록 경기의 지속적이고 빠른 회복이 이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위기 상황은 넘겼지만 잠재성장률이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복귀하긴 어려울 것이란 뜻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과 일본의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13.6%, 9.9%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밖에 보호무역주의 대두와 국제공조 약화, 동유럽 또는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발(發) 위기 가능성, 스태그플레이션 등 세계경제가 피해 나가야 할 지뢰가 한두 개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현수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재정부담이 한계에 이르면 민간에서 이를 받아줘야 하는데 그에 대한 우려가 많다”며 “한국 등 신흥시장에서도 지나친 기대심리로 주가와 부동산 가격만 과도하게 오르면 또 다른 거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미국 경제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그동안의 주택가격 하락, 실업률 상승이 소비를 위축시켜 2010년 1분기에 미국 경제가 재차 하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가 오르는 듯하다가 다시 꺾이는, 이른바 ‘더블딥(Double Dip)’에 대한 우려다. 회복조짐을 보이던 실물경제가 다시 무너지면 이는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져 금융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사에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았던 사례는 1929년 대공황, 1987년부터 8년간 이어진 저축대부조합의 파산, 20세기 말을 뒤흔든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파산 위기 등 모두 3차례였다. 이 중 가장 오랫동안 세계 경제를 수렁에 빠뜨린 것은 대공황으로, 위기 발생 10년 뒤인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서야 위기 국면이 종지부를 찍었다. 세계 경제가 숨이 끊어질 위기에서는 빠져나왔지만 중환자실에서 퇴원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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