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형제싸움’ 법정다툼 비화 조짐

  • 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박찬구 前회장 “해임 위법”… 회사 “법적 문제 없다”

박찬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부문 회장이 3일 자신에 대한 그룹의 해임조치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달 28일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된 박찬구 전 회장은 이날 금호석유화학 사내게시판에 ‘금호그룹 임직원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반박문을 통해 “박삼구 명예회장이 최근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위기를 초래했음에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나를 회장직에서 몰아냈다”고 주장했다. 그룹 경영을 둘러싼 박삼구 박찬구 두 오너 형제의 갈등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새로 출범한 ‘박찬법호’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등 그룹 경영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 박찬구 전 회장 해임 적법성 논란

박찬구 전 회장은 이날 게시판 글에서 “박삼구 명예회장이 불법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했다”며 “이에 대한 적절한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사회를 소집할 때 ‘주요 경영 현안’이라고 통보했다가 이사회에서 자신의 해임안을 기습적으로 상정했다는 것이 박찬구 전 회장의 주장이다.

그룹 경영에 큰 타격을 주는 시발점이 된 대우건설 인수에 대해서도 박찬구 전 회장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인수 추진 당시 인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박삼구 회장이 지나치게 무모한 가격과 풋백 옵션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조건으로 인수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해임절차나 이사회 등 모든 과정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뤄진 만큼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 박삼구 명예회장 일가 정조준

박찬구 전 회장은 자신의 조카이자 박삼구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그룹전략경영본부 상무의 주식 매입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세의 강도를 높였다. 박 상무 등이 최근 금호석유화학 주식 매입자금 마련을 위해 금호렌터카와 금호개발상사에 금호산업 주식을 340억 원에 매각했는데, 이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금호렌터카가 어떻게 대주주로부터 170억 원이 넘는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고, 금호개발상사가 왜 30억 원을 차입하면서까지 150억 원에 이르는 주식을 매입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박찬구 전 회장은 사실상 그 배후로 박삼구 명예회장을 지목하며 “불법적인 거래를 지시했거나 관여한 책임자는 응분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특히 박삼구 명예회장이 자신을 해임한 뒤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박찬법 당시 항공부문 부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내세운 것은 “참으로 노회한 전략”이라고까지 했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박세창 상무가 계열사에 주식을 매각한 것은 적법한 절차와 판단에 의해 내린 결정”이라며 “시장에 내다 팔 경우 금호산업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 박찬구 전 회장, 앞으로의 행보는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찬구 전 회장이 장고(長考) 끝에 ‘법적 대응’ 카드를 내놓은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주변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박삼구 명예회장이 자신을 그룹 경영권을 뒤흔든 장본인으로 몰아간 것에 크게 낙심했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무조건 형제라고 (그룹 회장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에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또 이사회 해임 결의(찬성 6, 반대 1표)시 아무리 기명투표라고 하더라도 기권표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에 많이 낙담했다는 후문이다.

박찬구 전 회장은 이날 대형 법률사무소를 변호인으로 선임하고 본격적인 법적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지난달 28일 열린 금호석유화학 이사회 무효 소송을 제기하거나 대표이사 해임 무효 가처분 소송부터 내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대표이사 해임 무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받아들여지면 박찬법 신임 그룹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 수행이 불가능하게 돼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 법적 대응 외에 박찬구 전 회장이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 박삼구 명예회장에게 경영상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있다.

한 경제계 인사는 “한때 재계가 자랑거리로 삼던 ‘형제 경영’ 전통이 2005년 두산그룹에 이어 이번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또 무너져 안타깝다”며 “형제들이 함께 법정에 서는 불행한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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